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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바이! 킬로그램의 어머니!


| 글 | 박미용 객원기자│이미지 출처│국제도량형국, 영국왕립학회


매년 10월이면 프랑스의 국제도량형국에서 특별한 의식이 열린다. 여기에는 표준 과학에서 가장 귀한 보물이 3중 유리관에 담겨 있다. 특별한 의식이란 이 보물이 온전히 있는지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다. 행사에는 세 사람이 꼭 참석해야 한다. 국제도량형국 국장, 국제도량형총회 의장, 그리고 프랑스 외무부에서 파견한 직원이다. 세 사람은 각자 보물함을 여는 열쇠를 하나씩 갖고 있다.



어떤 보물이기에 매년 이런 의식까지 치르는 걸까. 바로 1kg의 기준인 ‘국제 킬로그램 원기(IPK)’다. 이 의식이 치러진 지는 100년도 넘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13일에 치러진 의식을 참관했던 미국 스토니브룩대 철학과의 로버트 크리스 교수에 따르면 분위기가 여느 때와 달랐다고 한다. 이 의식의 주인공인 킬로그램 원기의 운명 때문이었다. 조만간 이 원기는 자신의 지위를 잃을 전망이다. 과학자들은 올해 안에 낡아빠진 19세기 표준을 시대에 걸맞은 21세기형으로 바꾸려고 한다. 지난해의 의식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프랑스 국제도량형국에 보관 중인 ‘국제 킬로그램 원기’.]





kg의 어머니인 국제 킬로그램 원기의 생김새는 평범하다. 백금과 이리듐이 9대1 비율로 이뤄져 있고, 너비가 39.17mm인 둥근 원기둥 모양이다. 하지만 세상의 그 어떤 귀금속보다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폭탄이 떨어져도 안전한 장소에서 일정한 온도와 습도가 유지되는 쾌적한 환경에서 지낸다. 게다가 티끌 같은 먼지조차 접근하지 못하도록 외부 공기가 차단된 3중 유리관 안에 고이 모셔져 있다.



kg의 표준은 1879년, 당시의 최첨단 기술로 태어났다. 국제도량형총회가 첫 번째로 열렸던 1889년에 “이 원기를 질량의 표준으로 한다”고 선포했다.



그렇다면 다른 단위에 대해서도 표준이 되는 물건이 있을까. 우리가 쓰는 모든 단위는 7가지 기본단위를 바탕으로 한다. 길이의 단위인 미터(m), 질량의 단위인 킬로그램(kg), 시간의 단위인 초(s), 전류의 단위인 암페어(A), 온도의 단위인 캘빈(K), 광도의 단위인 칸델라(cd), 그리고 물질량의 단위인 몰(mole)이다. 이 7가지 단위를 국제표준계(SI)의 기본단위라고 한다. 속도나 가속도, 힘과 같은 단위는 이 7가지 기본단위를 바탕으로 유도한다.



가장 역사가 긴 단위는 m와 kg이다. m와 kg은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태어났다. 이때는 m에도 kg처럼 원기가 있었다. 1m의 기준인 표준자가 국제 미터 원기였다. 지금 m는 더 이상 원기에 바탕을 두지 않는다. 국제 미터 원기는 이미 반세기 전에 폐기됐다. 대신 지금은 변하지 않는 빛의 속도에 기반을 두고 있다. 1m는 빛이 진공에서 299,792,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한 경로의 길이다. m 외에 다른 단위도 사물에 표준을 두고 있지 않다. 물리적 대상을 표준으로 삼은 단위는 kg이 유일하다.



그런데 이제 마지막 남은 실물 원기를 폐기하려111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히 얘기하면 원기가 만들어진 지 너무 오래되서 오차가 생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국제 킬로그램 원기가 3중 유리관 밖으로 나온 건 딱 네 차례다. 약 40년에 한 번 꼴로 외출을 한 셈이다. 바깥으로 나온 원기는 국제도량형국이 정한 방식으로 깨끗하게 목욕재계를 한다. 이때 원기의 복사본들도 함께 목욕재계를 한다. 그런 다음 복사본 모두가 원기와 질량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를 확인한다. 교정을 받은 복사본은 지위가 한 단계 낮은 또 다른 복사본들을 교정해준다. 이런 방식으로 세계의 1kg을 통일하는 것이다.









[원기를 국제도량형국이 정한 방식에 따라 세척하고 있다.]




낡은 원기 대신할 자연의 상수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국제 킬로그램 원기와 복사본 사이의 질량 차이가 벌어지고 있다. 가장 최근인 2007년 측정했을 때는 심한 경우 100μg(마이크로그램, 1μg=100만분의 1g)이나 차이가 나기도 했다. 설탕 결정의 반 정도에 해당하는 질량이다. 국제 킬로그램 원기를 보관하는 유리관 속 기체가 조금씩 빠져나가 원기의 질량에 영향을 주었던 걸까. 아니면 한 번씩 꺼낼 때마다 조금씩 공기 중의 미세먼지가 붙어서 복사본의 질량이 더 늘어난 것일까. 아쉽게도 이 물음에 과학자들은 뾰족한 해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원기와 복사본 사이의 질량 차이가 더 벌어지지 말란 법이 없다. 더 심각한 일은 원기가 복사본보다 더 안정적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점이다. 둘 사이의 질량 차는 확인할 수 있지만, 원기의 질량이 얼마나 변했는지는 알 방법이 없다. 원기 자체가 기준이기 때문에 얼마나 변했는지 확인할 길이 없는 것이다. 물리적 대상을 기준으로 삼는 원시적인 방법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독일의 한 표준과학자는 “킬로그램은 표준과학계에서 하얀 재킷에 묻어 있는 얼룩과 같다”고 말했다. 120년 동안 킬로그램의 기준으로 활약해 온 국제 킬로그램 원기는 표준과학계의 보물인 동시에 수치인 셈이다.



원시적인 국제 킬로그램 원기를 왜 아직까지도 갈아치우지 않았던 걸까. 킬로그램이란 질량의 단위를 현재의 방식보다 간단하면서도 정밀하게 유지하는 방법을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표준과학자들은 수치스런 원기에게 작별을 고하려 애쓰고 있다. 4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국제도량형총회가 올해 열리는데, 여기서 이 문제를 결정할 전망이다.









[한 때 1m의 기준이었던 ‘국제 미터 원기’.]





그렇다면 새로운 kg의 정의는 어떻게 달라질까. 표준과학자들은 m와 같은 방식으로 kg의 정의를 바꾸고 싶어 한다. 즉 1m를 표준자 대신 빛의 속도라는 자연의 상수를 이용해 정의한 것처럼 새로운 1kg도 변치 않는 자연의 기본 상수를 기반으로 하려고 한다. 자연 상수를 바탕으로 단위를 정의하는 것은 표준과학자의 이상이다.



유력한 후보로는 2가지가 있다. 아보가드로 상수와 플랑크 상수다. 아보가드로 상수는 원자량이 12인 탄소원자가 12g일 때의 탄소원자 개수다. 고등학교 과학 시간에 6.02×1023이라고 배우는 수다. 좀 더 자세히 표현하면 6.02214479×1023이다. 플랑크 상수는 양자역학의 토대를 세운 기본 상수다. 양자역학에서 가장 유명한 원리인 불확정성원리를 비롯해 여러 현상에 들어가는 상수로, 값은 6.62606896×10-34 J·s다.



아보가드로 상수가 거대한 값이라면, 플랑크 상수는 아주 작은 값이다. 극과 극의 값을 갖는 아보가드로 상수와 플랑크 상수가 어떻게 1kg의 새로운 정의가 될 수 있을까.




아보가드로 상수, 완벽한 규소구 이용
아보가드로 프로젝트는 아보가드로 상수를 기반으로 1kg을 정의하려는 계획이다. 특정 원자의 개수로 1kg을 정의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탄소로 1kg을 정의한다면 어떨까. 원자량이 12인 탄소원자가 아보가드로 상수인 6.02214479×1023개 모이면 질량이 12g이 된다. 따라서 탄소원자로 1kg을 정의한다면 1kg은 아보가드로 상수에 1000/12를 곱한 개수의 탄소원자 무게가 된다.



하지만 아보가드로 상수 그 자체도 어마어마한데 여기에 약 100배나 되는 원자의 수를 어떻게 하나하나 셀 수 있을까. 처음에는 아보가드로 상수를 이용한 1kg의 정의가 현실적이지 않아 보였다. 그런데 반도체 기술을 활용하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아보가드로 프로젝트는 탄소원자 대신 반도체 혁명의 주역인 규소원자를 이용하고 있다. 규소원자는 원자량이 28이다. 따라서 규소원자로 1kg을 정의할 경우, 아보가드로 상수에 1000/28을 곱하면 1kg이 되는 규소원자의 수가 나온다. 과학자들이 규소원자를 선택한 이유는 최첨단 반도체 기술을 이용하면 규소원자로 이뤄진 물질을 아주 정밀하게 가공할 수 있기 ?문이다.



규소원자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구를 만드는 기술이 핵심이다. 현재 아보가드로 프로젝트에서 만든 1kg짜리 규소구를 지구만큼 크게 확대하면, 가장 높은 산도 높이가 고작 2m 밖에 되지 않는다. 이 정도로 완벽한 구를 만들면 1kg이 되는 규소원자의 수를 알아낼 수 있다. 먼저 이 구의 부피를 잰다. 규소원자는 일정한 간격으로 배열돼 있으므로 X선으로 규소원자 사이의 거리를 잴 수 있다. 이렇게 구의 부피와 규소원자 간 거리를 알면 구를 이루는 규소원자가 몇 개인지를 계산할 수 있다.



이 방법은 직관적이고 실용적이지만 단점이 있다. 규소가 산화되면서 질량에 변화가 생기거나, 여러 개의 동위원소(원자의 종류는 같지만 질량이 미세하게 다른 원소)로 이루어진 규소에서 순수하게 한 종류의 동위원소로 이뤄진 규소 원자만을 얻어내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호주 정밀광학 연구소의 한 과학자가 1kg짜리 규소구를 들어보이고 있다.]









[미국 국립표준연구소가 보유하고 있는 와트 밸런스.]








플랑크 상수, 확실하나 복잡해
두 번째 후보는 플랑크 상수를 바탕으로 한 와트 밸런스다. 와트 밸런스는 전자기력으로 작동하는 양팔저울이라고 할 수 있다. 한쪽에는 질량을 측정하려는 대상을 올려놓고 다른 한쪽에는 전자기력을 걸어준다. 즉 한쪽 팔에는 mg(m은 질량, g는 중력가속도)의 중력이, 다른 한쪽에는 전자기력이 작용하는 것이다. 양쪽 팔이 평형을 이뤘을 때 전자기력을 측정하면 질량 m을 얻을 수 있다. 오늘날 정밀질량측정에 쓰이는 전자기저울의 원리다.




와트 밸런스는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전자기력을 조종해 저울의 양팔을 일정한 속도로 위 아래로 움직이게 한다. 이는 질량 m에 작용하는 기계적인 일률(단위 시간당 한 일이나 에너지를 전달하는 비율)과 다른 한쪽 팔의 전자기적 일률이 평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이다. 이 장치의 이름이 와트 밸런스인 이유다.



전자기 팔에 걸린 전류와 전압, 자기장, 이동 속도 등이 얼마인지를 정밀하게 알아내면 질량 m을 구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값은 측정 당시의 중력가속도 g다. 중력가속도는 같은 장소라도 수시로 미세하게 바뀌기 때문에 와트 밸런스를 이용하려면 중력가속도 값을 정확하게 측정하는 장비가 필요하다.



와트 밸런스는 1970년대에 영국 국립물리연구소가 플랑크 상수의 값을 정밀하게 측정하기 위해 개발했다. 이미 질량을 알고 있는 물체를 이용하면 와트 밸런스로 플랑크 상수를 정밀하게 측정할 수 있다. 만약 반대로 플랑크 상수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거꾸로 질량을 재는 데 쓸 수 있다.



아보가드로 프로젝트와 와트 밸런스 중 어느 쪽이 더 경쟁력이 높을까. 현재 와트 밸런스가 앞서 나가고 있다는 평가다. 와트 밸런스는 아보가드로 프로젝트에 비해 신뢰성이 더 높다. 하지만 와트 밸런스는 매우 복잡한 장치라 실용적이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워낙 어려운 기술이라 와트 밸런스는 몇몇 선진국에만 있다.



2011년 10월 국제도량형총회가 열리면 새로운 질량의 정의가 탄생한다. 아보가드로 상수와 플랑크 상수 중 과연 어느 것이 새로운 질량의 표준으로 등극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비록 정확성에서는 다소 떨어진다고 해도 1kg의 기준을 명료하고 직관적으로 보여 주는 원기가 사라진다고 생각하니 왠지 서운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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