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척박사 연구소

척척박사 연구소과학이야기제목별로 보기해설이 있는 과학

해설이 있는 과학

최신 소식 속에 담긴 다양한 과학정보에 대한 해설입니다.

세계는 링크와 노드로 이루어진다


스마트폰의 대중화, 모바일 네트워크의 확장, 언제 어디서나 접속가능한 인터넷. 20세기 말 인터넷이 정보화 혁명을 이끌었다면 최근의 모바일 환경은 단순한 정보교환을 초월하여 사람과 사람, 사람과 기계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네트워크 혁명을 이끌고 있다.

2010년 5월 5일, 일본 아키하바라의 카메라 양판점 요도바시카메라에서 한 남자가 트위터에 포스트를 올렸다. ‘[급모집] 화장실 휴지 in 아키바 요도바시 3층 남자화장실 변소칸.’ 요도바시카메라를 찾았다가 화장실이 급했던 그는 볼일을 보고 나서야 화장실에 휴지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급한 김에 트위터에 도움을 요청한 것.

그의 글은 다른 사람에게 글을 전파하는 기능인 ‘리트위트’를 이용하여 순식간에 수많은 트위터 이용자에게 퍼졌다. 트위터에 글을 올리고 나서 불과 20분만에 이 남자는 화장지를 들고 온 사람에게 구원(?)받았다. 그것도 생면부지의 사람으로부터.

이 일화는 무작위적인 네트워크의 위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여섯 단계만 거치면 헐리우드의 배우가 모두 연결된다는 ‘케빈 베이컨 게임’처럼 트위터에 올린 글은 촘촘하게 연결된 네트워크를 타고 생각보다 짧은 시간만에 정확히 필요한 장소로 연결된다. 단 20분만에 화장실 근처의 누군가가 곤경에 빠진 나에게 화장지를 들고 올만큼 세상은 생각만큼 넓지 않다는 얘기다.




●네트워크의 비밀을 풀다


‘작은 세상’을 가능하게 한 비결은 바로 네트워크. 네트워크는 사물과 사물의 관계, 요소간의 상호작용이다. 네트워크의 특성이 규명되기 시작하자 이전에는 누구도 명확히 알아보지 못했던 복잡하면서도 단순한 세계가 눈 앞에 드러났다.

물질을 소립자까지 분해하고 생물을 원자 단위까지 쪼개서도 이해하기 어려웠던 심원한 현상들을 아주 간결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낱낱이 분해된 세계에 대한 ‘설명서’가 등장한 것이다. 그러나 실상 거창해 보이는 이 설명서는, 아주 사소한 계기로 발견됐다.

“저는 학부때부터 전공이 물리학이었습니다. 통계물리학과 전산물리가 주전공이었죠. 복잡계를 주로 다루었는데 그 중에서도 프랙탈 연구가 제 박사논문 주제였습니다. 1998년부터는 미국의 노트르담 대학(The University of Notre Dame)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았지요. 당시 지도교수님이 바라바시(Albert-Laszlo Barabasi) 교수님이었는데 심심풀이로 월드와이드웹 연구를 해보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어요. 그 때는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 본 연구와 별 상관 없이 시작한 일이었는데, 그렇게 시작한 연구가 엄청난 히트를 친 거죠.”

정하웅 교수와 바라바시 교수가 관심을 두었던 월드와이드웹은 일반적인 상식과 다른 세계였다. 한 달 가량 분석 프로그램을 짜서 연구에 돌입하자 웹이 생각보다 작은 세상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던 것이다.

“웹 연구의 목적은 웹의 위상구조를 파악하려는 것이었어요. 일반적으로 웹이 무질서하고 광활한공간이라고들 생각하죠. 그러나 막상 연구해보니 웹은 어떤 웹페이지에서든 평균 19번만 링크를 타면 8억개가 넘는 웹페이지들 중 어디로도 갈 수 있는 좁은 세계였습니다. 게다가 소수의 웹페이지에 링크가 집중되어 외부공격에도 취약했지요. 물론 지금의 인터넷은 예전보다 복잡해졌지만 네트워크로서 기본 속성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바라바시 교수와 정하웅 교수는 ‘인터넷은 전체의 1%만 공격해도 절반의 기능이 마비되고 4%정도를 공격하면 연결이 완전히 끊긴 조각으로 파편화된다’는 요지의 논문을 네이처에 보냈다. 예상치도 못하게 네이처는 이 논문을 표지기사로 실었고 CNN 등의 주요 언론들이 관심을 보였다. 이후 발표한 논문들도 이슈메이커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심심풀이로 시작한 연구가 전에 없던 새로운 분야를 연 것이다.

 

 



사진

 



●융합학문의 ‘허브’

 

 


“물리학은 모든 과학의 근간입니다. 세상을 이루는 기본 원리를 파악하는 학문이 바로 물리학이기때문이지요. 네트워크과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생물학, 화학 등 기본 과학뿐 아니라 경제학이나 사회학, 도시공학과 같은 학문에도 얼마든지 적용될 수 있지요.최근에는 정치인간의 관계를 조망하여 정치권의 허브를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사실 네트워크이론이라는 게 일반이론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어디에나 적용될 수 있어요.”

정하웅 교수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네트워크과학의 진정한 매력은 어떤 연구든 가능한 것이라고 한다. 사실 일반이론이라는 특성상 초기에는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기도 했다. 누구나 알아낼 수 있는 이론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가 논문을 냈을 때 동료 과학자들의 반응은 ‘앗! 나도 할 수 있는 거였는데’였어요. 그만큼 모든 현상의 근간에는 인터넷에서 찾아낸, 네트워크의 기본적인 속성이 녹아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때문에 네트워크과학은 타 분야와의 공동 연구가 매우 중요합니다. 특히 네트워크과학이 알려주는 것은 일반 원리를 적용하여 계산해 낸 근사치일 뿐이기 때문에 실증 연구가 반드시 필요하지요. KAIST의 이상엽 교수님과 진행했던 시스템생물학 연구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네트워크과학이 가상세포를 모델링하고 생물학이 이 모델을 검증하여 피드백하며 협력했습니다.”

협력연구가 필수적이라는 말은 뒤집어 생각하면 네트워크과학이야말로 융합학문의 허브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네트워크과학은 이미 주가분석이나 마케팅 계획 수립, 정책의사결정 등 다양한 분야에 적용되는 실용학문으로 입지를 다지고 있다. 여러 분야에서 각광을 받다보니 정하웅 교수의 연구는 그야말로 종횡무진이다.






사진

 




“얼마 전에는 SK커뮤니케이션의 협력을 얻어 싸이월드 사용자들의 일촌네트워크를 분석하는가 하면 도로 네트워크를 분석한 적도 있었습니다. 특히 도로 연구는 가장 재미있었던 연구 중 하나로 기억에 남습니다. 이 연구에서는 ‘도로를 많이 만들수록 교통체증이 심화된다’는 역설적인 결론을 얻었는데, 운전자 대부분이 가장 빠른 길을 선택하려고 하는 탓에 전체적인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다양한 연구를 하는 정하웅 교수지만 국내 환경은 융합학문 연구를 하기에 다소 아쉬운 점이 많다고 한다.

“학제간 자유로운 연구환경이 무엇보다 아쉽습니다. 미국에서 학제간 연구의 메카가 바로 산타페연구소죠. 온갖 분야의 연구자들이 자유롭게 교류하는 공간입니다. 특별한 계획이나 프로젝트가 없어도 연구자들끼리 교류하다가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즉석에서 팀을 짜고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지요. 이렇게 흥미 위주로 시작한 연구가 중요한 성과를 내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대학교나 연구기관에서도 이러한 연구활동에 특별한 실적을 요구하지 않는 경우가 많지요. 원래 창의성이라는 게 실용적이지 않을 것 같은 곳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정하웅 교수는 앞으로 범람하는 정보를 조직화하여 체계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이 중요해질 것이라며 데이터 과학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고 한다. 새로운 관심사가 계속 생겨나는 한, 언제까지고 재미있게 연구하고 싶다는 그가 다음번엔 무엇을 발견할지 사뭇 기대된다.

 

 



글·사진 김택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관련주제가 없습니다.
내과학상자담기  E-MAIL 프린트 카카오스토리 트위터 페이스북 RSS
관련 콘텐츠가 없습니다.

나도 한마디 1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등록하기

목록


내 당근 보러가기

내 뱃지 보러가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