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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소식 속에 담긴 다양한 과학정보에 대한 해설입니다.

스마트시대, 우리는 스마트해졌나


| 글 | 강석기 기자 | 일러스트 황중환


우리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지내고 있는가? 머리를 컴퓨터에 처박은 채 걸러지지 않은 인생의 소소한 부분들에 그 어느 때보다 정신이 팔려 있다.

- 매기 잭슨, ‘집중력의 탄생’에서











‘듀얼코어 프로세서 탑재.’



올해 들어 성능이 업그레이드되면서 좀 더 ‘스마트’해진 스마트폰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좀 더 빨리, 더 많은 데이터를 처리할 수 있어 이제 스마트폰은 진정한 ‘손안의 PC’가 된 셈이다.



지난해 스마트폰 충격이 휩쓸고 지나갔다면 올해는 태블릿PC 열풍이 불 것으로 보인다. 최근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글로벌 모바일 쇼(MWC)에서는 다양한 태블릿PC가 소개됐고 원조격인 애플도 3월에 ‘아이패드2’를 출시했다.



이런 스마트 기기들의 장점은 언제 어디서나 버튼만 누르면 바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집이나 사무실에서 PC를 켜놓으면 언제든지 인터넷을 쓸 수 있지만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필요할 때 수초 내에 인터넷을 연결할 수 있다는 건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사람들은 스마트 기기에 이메일 주소나 트위터, 페이스북 같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연결해 수시로 ‘세상 돌아가는’ 일들에 대한 정보를 얻고 있다. 매시간, 아니 매분 단위로 우리 지식의 버전이 ‘업데이트’되는 셈이다.





완벽한 멀티태스킹 환경
“처음에는 많은 사람들과 실시간 의견과 정보를 교환할 수 있다는 게 무척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점점 빠져들게 되면서 정작 제 일이 안 되더군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죠.”



동아일보에 인기만화 ‘386C’를 연재하는 황중환 기자는 트위터에 가입했던 초기 경험을 이렇게 얘기했다. 처음에는 이런 네트워크에서 얻은 정보가 만화의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데 도움이 될 줄 알았는데 수시로 올라오는 글을 읽고 답을 하다 보니 정작 생각의 흐름이 끊겨 마감이 임박하도록 주제를 잡지 못해 진땀을 흘리기도 했다고.



“우리 뇌는 본질적으로 멀티태스킹(multitasking)을 하지 못합니다. 이는 오래전부터 알려진 사실입니다.”



고려대 교육학과 김상일 교수의 설명이다. 멀티태스킹이란 한꺼번에 두 가지 이상의 일을 하는 걸 말한다. 그런데 우리는 아무 문제없이 TV를 보면서 밥을 먹고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러닝머신을 달리기도 하지 않는가.



여기서 문제 삼는 멀티태스킹은 이런 습관적인 행동이 아니라 새로운 정보를 습득하거나 기억을 재구성하는, 한마디로 ‘머리를 쓰는’ 일을 두 가지 이상 할 때다. 예를 들어 지금 기자가 이 기사를 쓰면서 모니터 한 구석에는 메신저를 켜놓고 동료들과 잡담을 하고 한쪽에는 주식시세를 점검하고 스마트폰으로는 페이스북 친구들의 근황을 체크하고 있다면 이 한 문단을 완성하는 데 한 시간이 걸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사람이란 뭔가를 반복하다보면 결국 거기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멀티태스커(multitasker, 평소에 멀티태스킹 환경에서 지내는 사람)는 조금이나마 멀티태스킹을 더 잘하지 않을까.






설명



이미지

 

멀티태스커는 집중하지 못해


“자, 준비되셨죠? 시작합니다!”



봄기운이 완연한 3월 중순 어느날, 기자는 연세대 심리학과 이도준 교수의 연구실에서 ‘과제전환’이라는 인지력 테스트를 받았다. 화면에서 글자와 숫자가 짝을 이룬 신호를 보고(예를 들어 2k) 자음인지 모음인지, 홀수인지 짝수인지 판단해 버튼(자음과 홀수는 ‘F’ 버튼, 모음과 짝수는 ‘J’ 버튼)을 눌러야한다.



이때 본 신호에 앞서 ‘글자’ 또는 ‘숫자’라는 지시 신호가 나온다. 따라서 ‘글자’란 신호 뒤라면 k가 자음이므로 ‘F’ 버튼을, ‘숫자’란 신호 뒤라면 2가 짝수이므로 ‘J’ 버튼을 눌러야 정답이다. 과제전환이란 ‘글자’라는 지시 신호가 연속해 나오다가 어느 순간 ‘숫자’라는 지시 신호로(또는 그 반대로) 바뀌는 경우다. 자음과 모음 구별에 온 신경을 쓰다가 갑자기 홀수와 짝수로 기준이 바뀌자 상당히 당황스럽다. ‘2k’이란 신호에 움찔하다가(시간 지연) 그만 ‘F’ 버튼(글자라면 맞지만 숫자라면 틀리다)을 누른다.



과제전환은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멀티태스킹 능력을 테스트하는 실험이다. 과제전환이 일어나는 부분에서 반응시간이 늦어질 뿐 아니라 오답인 경우가 많다.



“별로 어려울 것 같지 않은데….”



사진촬영차 동행한 편집디자이너 김인규 부장이 나섰다. 평소 멀티태스킹의 대가임을 자랑하는 김 부장 역시 실험을 끝내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테스트 결과 기자와 디자이너 모두 성적이 형편없어 해석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사전에 충분히 연습하지 않고 테스트를 했기 때문이다.



“지난 2009년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자들이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평소 멀티태스킹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과제전환 실험에서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성적이 더 나빴습니다. 상식적인 예측과 반대되는 놀라운 결과였죠.”



이 교수의 설명이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이런 결과가 멀티태스킹을 많이 하는 사람이 주변의 필요 없는 정보를 걸러내는 능력이 떨어진 데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집중력이 떨어져 늘 산만한 상태로 있다는 것. 그런데 왜 우리는 멀티태스킹을 못할까.









뇌는 컴퓨터가 아니다
인간의 발명품인 카메라의 작동 원리로 눈의 작동 원리를 설명하듯이 뇌 역시 종종 컴퓨터에 빗대 설명한다. 실제로 기억 같은 용어는 공통으로 쓴다. 그 결과 사람들은 뇌를 ‘젖어 있는’ 컴퓨터로 생각하곤 한다.



지난 반세기 컴퓨터의 성능은 눈부시게 발전해 왔다. 무어의 법칙에 충실하게 반도체 집적회로의 성능은 18개월마다 2배씩 늘어났다. 과거 건물 하나를 통째로 사용했던 컴퓨터의 성능을 오늘날 넷북도 가볍게 뛰어넘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PC는 여러 프로그램을 동시에 열어놓아도 거뜬하게 ‘멀티태스킹’을 해치우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뇌의 하드웨어는 1956년 그 유명한 논문이 발표된 이후 현재까지 사실상 변화가 없었다. 그 유명한 논문이란 미국 프린스턴대 심리학과 조지 밀러 교수가 ‘심리학리뷰’에 실은 ‘마법의 수 7, ±2’라는 묘한 제목의 논문이다. ‘정보를 처리하는 우리 능력의 한계’라는 부제를 봐야 인지과학 분야일 거라고 감을 잡을 수 있다.



논문의 요지는 우리 뇌가 동시에 처리할 수 있는 정보의 양이 고작 ‘일곱 덩어리’라는 것. ±2는 개인에 따라 다섯 덩어리에서 아홉 덩어리까지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여기서 덩어리(chunk)란 의미있는 단위를 말한다.



예를 들어 낯선 전화번호를 볼 경우 각각의 숫자가 하나의 덩어리이고 노랑, 파랑, 빨강 등 여러 색 이름이 나열된 경우는 ‘노랑’이란 한 단어가 덩어리다.



한마디로 우리 뇌는 낯선 전화번호 하나를 기억하기도 빠듯하다는 말이다. 친구가 문자로 찍어준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려고 버튼을 누르다가 방금 외운 게 생각이 안 나 결국 다시 문자를 본 경험은 누구나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낯선 전화번호를 기억해 내 전화를 거는 과정을 ‘작업기억’이라고 부른다.



고려대 김상일 교수는 “작업기억의 용량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는데 소위 머리가 좋다는 사람들이 용량이 크다고 볼 수 있다”며 “그럼에도 본질적으로 멀티태스킹을 능숙하게 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설사 사람의 정보처리능력이 보잘 것 없더라도 요즘 같은 스마트 시대에 그게 큰 문제일까. 내 PC가, 내 스마트폰이 나의 뇌를 대신해서 정보를 저장해뒀다가 필요할 때는 언제나 꺼내 쓸 수 있지 않은가.







 



정보와 지식은 달라


“수업 시간 전에 파워포인트(프리젠테이션 프로그램) 파일을 달라는 학생들이 많지만 전 주지 않습니다.”



연세대 심리학과 이도준 교수는 자신이 대학생이던 20여 년 전에 비해 강의실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음을 실감하고 있다. 예전에는 교수가 백묵으로 칠판에 써내려가며 수업을 진행했고 학생들은 노트를 펴놓고 열심히 필기를 했다(물론 지금도 이런 수업이 있다). 그런데 이제는 프로젝트로 쏘아 올린 파워포인트 자료를 보면서 강의를 한다.



학생들이 파일을 미리 달라는 건 자료를 프린트해 거기다 필기를 하려는 것. 일견 타당해 보인다.



“문제는 많은 학생들이 ‘자료(정보)’를 확보하게 되면 자신들이 해당 ‘지식’을 갖게 된 걸로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수업집중도가 떨어지고 나중에 평가에서도 결과가 안 좋게 나오죠.”



인터넷 덕분에 정보를 얻는 게 쉬워지면서 ‘모르는 게 있으면 ‘네이버 지식검색’에 물어보면 되지…’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구태여 일일이 메모를 하고 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우리 뇌를 컴퓨터에 비유하면 지식이란 하드디스크에 저장된 정보인 셈인데 지금 같은 인터넷 시대에 굳이 하드디스크에만 의지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기억 연구의 세계적인 대가인 미국 컬럼비아대 에릭 켄델교수에 따르면 이 역시 우리의 착각이다. 컴퓨터의 기억은 이진수의 배열인 데이터를 디스크에 자기 정보로 저장하는 정적인(편집이 없는) 과정이다. 우리 뇌는 단백질의 생성과 파괴라는 생화학 과정을 통해 새로운 시냅스(뉴런 사이의 연결)를 구축하거나 재배치해 ‘기억’을 형성한다. 한 마디로 동적인 과정이다. 따라서 데이터를 스캔하는 것만으로는 결코 장기기억은 형성되지 않는다.



장기기억으로 변환되지 않은 정보는 그 순간만 지나면 연기처럼 사라진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멀티태스킹이 일상화된 환경에서 잠깐 이 정보를 보다 금방 또 다른 정보를 보는 패턴을 반복한다. 그 결과 더 많은 시간을 읽고 쓰는 데 투자하면서도 오히려 하루가 저물 때 손에 움켜쥔 모래가 빠져 나가듯 입력한 다양한 정보가 사라져 버리는 초라한 결과를 얻고 있다.










[최근 교육현장에서는 다양한 멀티미디어 장비가 도입되고 있다. 잘 활용하면 수업의 질을 높일 수 있지만 오히려 수업 집중도를 떨어뜨릴 위험성도 있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한 교육은 운전이나 전투 같은 상황에 미리 적응할 수 있는 매우 유용한 방법이다. 시뮬레이션으로 아파치헬기 훈련을 하는 모습.]





스마트 교육, 신중히 접근해야
정보의 과잉이 오히려 기억력을 떨어 뜨리는 흥미로운 사례 가운데 하나는 TV 프로그램의 자막이다. 최근 뉴스나 다큐멘터리, 오락 프로그램을 보면 외국 방송이 아닌데도 출연자의 대사를 굳이 자막으로 표시하는 경우가 많다. 얼핏 생각하면 귀로 듣고 눈으로 보니 그 장면이 더 많이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과연 그럴까.



미국 캔자스주립대 로리 버겐 교수팀은 지난 2005년 ‘CNN헤드라인뉴스’를 분석한 연구결과를 학술지 ‘인간커뮤니케이션연구’에 발표했다. 이 프로그램은 뉴스진행자의 말과 함께 아래 자막이 나오는 포맷인데 연구자들은 이 화면과 여기서 자막을 없앤 화면을 본 사람들을 대상으로 내용을 얼마나 기억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자막이 있는 화면을 본 집단이 기억량이 오히려 10% 적었다. 연구자들은 “이중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양식이 시청자의 주의집중 용량을 넘어섰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런 위험성은 멀티미디어 자료를 십분 활용하고 있는 교육현장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최근 태블릿PC를 기반으로 한 교재개발이 한창이다. 머지않아 학생들이 책과 공책이 잔뜩 든 무거운 가방을 매고 다니는 대신 태블릿 PC를 갖고 다니는 풍경이 펼쳐지리라는 성급한 예상이 나오기도 한다. 과연 이런 환경이 학생들의 학습능력을 높여줄까.



태블릿PC에 대한 연구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2003년 미국 코넬대 게리 게이 교수팀의 연구 결과는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연구자들은 강의를 듣는 대학생 절반에게 인터넷이 되는 노트북을 주고 강의를 들을 때 활용할 수 있게 했다. 나머지 절반은 그냥 강의만 들었다. 강의가 끝난 뒤 수업내용을 평가하자 노트북을 활용한 집단이 오히려 낮은 점수를 얻었다.



미디어와 교육의 관계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미국 LA 캘리포니아대 심리학과 패트리시아 그린필드 교수는 “많은 대학들이 학습 효율을 높이려고 도입한 멀티미디어 교육기자재가 오히려 학습 효율을 떨어뜨린다는 걸 잘 모르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물론 교육에 새로운 미디어를 도입하는게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다.



비행기 조종사들은 실전을 뛰기에 앞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감을 잡는다. 운전교육도 마찬가지다. 시뮬레이션은 경험자에게 책이나 강의가 줄 수 없는 ‘몰입감’을 느끼게 한다. 미국 하버드대 교육대학원 크리드 데데 교수는 2009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글에서 “몰입은 우리가 포괄적이고 실제 같은 체험을 하고 있다고 느끼는 주관적인 인상”이라며 “디지털 환경에 몰입함으로써 우리는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한 다양한 체험을 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비디오 게임을 한 경험이 의료기술을 배우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베스이스라엘메디컬센터의 제임스 로서 박사팀은 복강경 수술을 훈련하는 교육과정에 비디오 게임 ‘기술’이 미치는 영향을 조사했다. 2007년 학술지 ‘외과아카이브’에 실은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1주일에 3시간 이상 비디오 게임을 한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실수가 37%나 적었고 수술에 걸리는 시간도 27% 짧았다고 보고했다. 연구자들은 “비디오 게임 경험은 눈과 손의 공조가 필요한 과제를 해내는 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자를 발명한 인류는 독서를 할때 기존의 시각과 청각 회로를 활용한다. 그 결과 문맹인 사람에 비해 형태나 소리에 대한 민감도가 다소 떨어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이처럼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은 뇌의 회로를 재배치한다.]





인터넷은 가상의 사냥터


그렇다면 우리가 스마트 세계의 ‘쓰나미’ 속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자기중심을 잡고 살아가는 방법은 없을까. 물론 노력하면 안 될 것도 없겠지만 쉽지 않은 일이다. 우리의 ‘본능’과 코드가 딱 맞는 스마트 매체들은 흡입력이 강력하기 때문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책을 제치고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TV가 이제는 컴퓨터에게 자리를 넘겨준 지 오래다. 어린 시절 “TV 좀 그만 봐라!”는 부모님 말씀을 듣고 자랐던 30, 40대들은 이제 그들의 자녀에게 “컴퓨터 좀 그만 해라!”고 말하고 있다. 물론 자녀들이 컴퓨터로 주로 하는 건 게임과 인터넷 서핑이다.



책보다 TV가 더 끌리는 건 TV가 좀 더 보기 편하고 재미있기(즉 본능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책은 수 천 년 전 인류가 발명한 문자를 매개로 하는 매체다. 그 내용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주변에 신경을 끄고 책에 집중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본능적으로 산만한 존재다. 산만함이란 주위의 사소한 환경변화에 끊임없이 반응하는 현상으로 인류가 수렵 채집을 하던 시절에는 생존에 중요한 기능이었다. 사바나 평원 한복판에서 홀로 독서삼매경에 빠져있다면 사자의 밥이 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TV는 그 자체가 하나의 세상으로 우리에게 지각되기 때문에 의식적인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우리의 주의를 끌어 당길 수 있다. TV보다 게임이나 인터넷이 더 매력적인(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니지만) 이유는 좀 더 본능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TV가 일방적인 매체인 반면 인터넷은 양방향성 매체이기 때문에 현실성이 한층 크다.



TV시청자가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란 고작 리모콘으로 채널을 돌리는 정도지만 인터넷 이용자는 자신이 찾고 싶은 내용을 검색하고 선별(클릭)하고 메시지를 남길 수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모든 과정이 ‘수렵 채집인’인 인류의 본능에 완벽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점이다.



즉 사바나를 누비며 사냥과 채집을 하며 살아온 인류의 피가 끊임없이 무언가를 검색하고 하이퍼링크를 통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추적해가는 인터넷의 양식에 끓어오를 수밖에 없다는 것. 현대인들은 스스로를 ‘디지털 유목민(digital nomad)’이라고 부르며 한껏 낭만을 부여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가상의 사냥감을 끝없이 쫓고 있는 ‘디지털 사냥꾼’인 셈이다.










[스마트기기는 멀리 있는 사람들과의 네트워크는 강화시켜주지만 역설적으로 가까이 있는 사람을 소외시키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인터넷 사냥터가 더욱 매력적인 이유는 사냥감이 어마어마하게 많을 뿐 아니라 사냥하기도 매우 쉽기 때문이다. 사냥감 대부분은 쫓다가 말거나(인터넷 화면 하나를 보는 시간은 평균 20초가 안 된다) 잡은 것(다운받은 파일)도 굴속(하드디스크)에 던져둔 뒤 잊어버린다. 잡아온 사냥감이 우리가 먹을 수 있는 양보다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어차피 먹지도 않을 걸 사냥하느라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는 셈이다. 어쩌면 사냥 자체를 즐기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늘날 인류가 이룩한 문명은 문자의 발명에서 비롯됐다. 기록을 통해 정보가 축적됐을 뿐 아니라 문자로 쓰인 기록을 읽는 과정(독서)을 통해 ‘반성적(reflective)’ 사고를 키웠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개념을 만들어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독서는 뇌의 회로를 바꾸는 것으로 나타났다. 프랑스 남파리대 스태니슬라스 데에네 박사팀은 지난해 12월3일자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에서 글을 해독하는 회로가 기존의 시각과 청각 회로를 이용해 형성되면서 시각과 청각 기능을 변화시킨다는 결과를 소개했다.



연구팀은 다양한 시각자극을 준 뒤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과 문맹인 사람의 뇌 시각영역의 활동을 비교했다. 얼굴이나 집 같은 이미지의 경우 문맹인 사람이 더 민감하게 반응한 반면 글자 이미지는 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 쪽이 훨씬 민감하게 반응했다. 연구자들은 “원래 얼굴을 인식하는 뇌의 영역이 글을 읽는 회로를 만드는 데 활용된 결과”라고 설명했다.



지난 수년 동안 신경과학은 뇌가 정적인 기관이 아니라 끊임없이 시냅스가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동적인 기관임을 밝혀냈다. 심지어 성인의 뇌에서도 새로운 뉴런이 만들어진다. 흥미롭게도 뇌의 이런 역동성에는 ‘용불용설’이 적용된다. 즉 쓸수록 강화되고 안 쓰면 폐기되는 것이다. 미국 LA 캘리포니아대 의대 제프리 슈바르츠 교수는 이에 대해 진화론의 적자생존을 빗대 ‘바쁜자생존(survial of the busiest)’이라고 표현했다.



각종 스마트 기기의 난무로 깊이 있는 독서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현실에 대해 그린필드 교수는 “반성적 사고를 원천적으로 막고 있는 실시간 매체(우리가 상황의 진행을 통제할 수 없는)인 TV는 충동성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게임이나 인터넷 역시 성찰보다는 충동에 가까운 매체다. 우리 뇌에서 ‘성찰 회로‘는 위축되고 ‘충동 회로’는 강화되고 있는 셈이다.



스마트 시대는 역설적으로 우리의 뇌 회로를 문자 발명 이전 인류의 상태로 되돌리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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