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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


마거리트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에게 승리란 무엇일까? …알고 싶어….
견딜 수 있는 만큼, 아마도, 그 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겠지….
- 테네시 윌리엄스,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에서

지난 3월 23일 미국 할리우드의 전설적인 여배우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79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젊은 사람들은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얼마나 대단한 배우였는지 잘 모르겠지만 기자가 어렸을 때만 해도 TV ‘주말의 명화’ 시간에 ‘자이언트’ ‘클레오파트라’ 같은 그녀가 주연한 영화를 자주 방영했다.

그럼에도 엘리자베스 테일러에 대한 인상은 좋지 않았는데 툭 하면 “또 이혼하고 7번째 결혼을 했다”는 식의 외신이 들리곤 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근래 들어서는 TV에서 그녀가 출연한 영화를 보여주는 일도 드물다.

그런데 작년 이맘때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EBS인가에서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주연한 영화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가 막 시작하고 있었다. 상대역이 폴 뉴먼이었고 원작이 미국의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의 희곡이라 한 번 보기로 했다.

기자는 평소 연극의 대본인 희곡을 읽는 걸 좋아해 테네시 윌리엄스의 대표작인 ‘유리 동물원’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는 읽어봤지만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인 ‘뜨거운 양철 지붕 위의 고양이’(1955년 퓰리처상, 뉴욕 극비평가상 수상)는 아직 못 본 상태였다.

별로 기대하지 않고 턱을 괸 채 누워(보다 졸리면 자겠다는 태도)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몸을 일으켜 끝날 때까지 똑바로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주인공 마거리트(매기) 역할을 한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연기(와 미모)에 압도됐기 때문이다(1958년 작품으로 당시 그녀는 26세였다). 물론 남편 브릭으로 나온 폴 뉴먼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며칠 뒤 책을 사 읽어보니 영화의 캐스팅이 완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희곡속의 매기보다 더 ‘매기적’이었다!


 



●퓰리처상 받은 연극 영화화


영화나 연극(또는 희곡)을 보지 않은 사람이 많을 것이므로 스토리를 소개한다. 미국 남부의 대지주인 폴리트 씨의 65세 생일을 맞아 온 가족이 모였다. 폴리트 씨는 암이 퍼져 손을 쓸 수 없는 상태지만 본인과 아내만 모르고 있다. 장남 내외는 유산을 상속받기 위해 안달이 났다. 폴리트 씨가 차남만 좋아하기 때문이다.

형의 입장에서 희망은 브릭이 아직 자식이 없는데다가 알코올중독자라는 것. 유명한 풋볼선수였고 은퇴 후 잘 나가는 해설자였던 그는 동료 선수이자 절친이었던 스키퍼가 자살한 뒤 아내를 멀리하고 술에 빠져들었고 해설자도 그만뒀다.

이야기는 매기가 브릭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매달리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브릭은 그런 아내를 역겨워한다. 그는 왜 미모의 젊은 아내를 거부할까.

극의 중반 폴리트 씨와 브릭의 대화에서 의문이 풀린다. 폴리트 씨는 브릭을 따로 불러 술에 젖어 무너져가는 아들에게 그 이유를 추궁한다. 처음에는 진지한 대화를 기피하던 브릭은 스키퍼와 동성애 소문을 거론하는 아버지의 말에 흥분해 피차 진실을(아버지가 암으로 죽게 될 것이라는 것도) 이야기하기로 결심한다.

즉 브릭과 매기의 결혼 후에도 스키퍼가 미련을 갖자 매기는 스키퍼를 동성애자라고 몰아세웠고 스키퍼는 이를 부정하기 위해 그녀와 잔다. 그는 브릭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고백하지만 브릭은 전화를 끊고 스키퍼는 죽는다. 브릭은 아버지에게 “(동성애는) 그 애의 진실이지 나는 아니에요!”라고 항변한다.

이어서 아버지도 자신의 진실을 직면하고 물러난다. 아버지가 안 보이는 사이 장남은 어머니에게 상황을 알리고 미리 준비한 아버지 사후 농장운영 방안을 제시하지만 어머니의 분노를 산다. 이때 등장한 폴리트 씨는 야한 농담을 하며 자신의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인다. 매기는 생신선물이라며 임신을 했다고 거짓으로 알리고 아버지는 기뻐하며 유언장을 작성할 결심을 한다.

브릭과 둘만 남은 매리.

마거리트 가만히 있어 줘서… 고마워….
브릭 괜찮아, 매기.
마거리트 당신이 내 체면을 세워 준 건 신사다웠어!

술기운에 침대에 누운 브릭에게 다가간 매기는 “오늘 밤 우리는 거짓말을 진짜로 만드는 거야”라고 말하며 불을 끈다.





●삶의 위기를 직시한다는 것


이 작품 제목의 한 구절인 ‘뜨거운 양철 지붕(hot tin roof)’은 비단 매기뿐만 아니라 우리가 마주친 삶의 위기 아닐까. 매기는 펄쩍거리면서도 뛰어내리지 않고 버티지만 스키퍼와 브릭은 견디지 못하고 뛰어내렸다(자살과 알코올중독). 브릭은 아내에게도 “그러면 지붕에서 뛰어내려, 뛰어내리라고(자신에게 애정을 구하는 대신 바람을 피우라는 뜻)”라고 말한다.

극은 브릭이 삶의 의지를 되찾는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하게 끝내지만 아버지와의 진실한 대화, 죽음을 담담히 받아들이는 아버지 모습, 아버지가 어서 죽어 농장을 차지하기만 바라는 형 내외에 맞서 싸우는 매기의 용기가 그를 변화시킨 것만은 분명하다.

최근 카이스트 학생 3명이 잇달아 자살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당황하고 있다. 한 교수는 “어려울 때는 혼자 고민하지 말고 제발 교수들을 찾으라”는 글을 트위터에 올렸고 학교도 전 학생을 대상으로 심리검사를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학업을 따라가기 어려운 현실, 진로에 대한 회의, 이성 문제, 우울증 성향 등 이유야 많지만 결국 이들은 뜨거운 양철 지붕을 견디지 못하고 뛰어내린 셈이다. 좀 더 버틴다면 결국은 해도 기울고 양철 지붕에 남은 온기에 오히려 달콤한 잠에 빠질 수도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이들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이야기하고 따뜻한 위로를 받을 수 있는 누군가가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과 함께. 브릭에게 매기가 있는 것처럼.

마거리트 아, 연약한 사람들, 당신같이 약하고 아름다운 사람들! 그토록 우아하게 포기해 버리다니. 당신에게 필요한 건 누군가… 당신을 붙잡아 줄 사람이야…. 사랑으로 부드럽게, 부드럽게 당신의 삶을 당신에게 되돌려 줄 수 있는.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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