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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소식 속에 담긴 다양한 과학정보에 대한 해설입니다.

김태희, 프림, 카제인나트륨






“제가 자주 가는 다방에서 커피 한 잔 하시죠.”

“네?”

며칠 전 회사를 찾아온 손님과 점심을 하고 나서다. 별다방(스타벅스)이란 은어를 안다고 생각하고 농담을 한 건데 ‘별’자를 빼먹어서 진짜 다방으로 들은 것이다. 불과 10여년 사이에 다방에 간다는 게 뜻밖일 정도로 카페가 번창하고 있다.

원두를 즉석에서 갈아 수증기로 뽑아낸 에스프레소 베이스의 커피인 아메리카노, 카푸치노, 카페라테에 맛을 들인 사람들이 점점 늘고 있다. 그럼에도 대세는 여전히 인스턴스 커피, 그 중에서도 프림과 설탕이 같이 있어 먹기 좋은 조제커피(커피믹스란 상품명이 일반명사화 됐다)다. 대형마트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제품이 조제커피라고 한다.





●1958년 식품화학자들이 프림 만들어 내


최근 배우 김태희 씨가 모델로 나오는 조제커피 신제품 광고가 화제다. ‘프림 속 화학적 합성품 카제인나트륨을 뺐다’는 문구가 들어간 TV광고는 식약청에서 광고시정명령을 받았다.

최근 신문광고를 보면 이 제품의 프림에는 카제인나트륨 대신 무지방우유가 들어있다고 한다. 광고 문구가 말풍선 안에 있는 것도 아닌데 마치 김태희 씨의 말인 것 같아 솔깃해진다.

‘카제인이면 우유단백질인데 그 염(salt)인가?’

궁금증이 생겨 집에 와서 ‘Food Chemistry(식품화학)’이란 책을 들었다. 화학이 전공인 기자는 식품이나 요리의 과학(대부분 화학의 영역이다)에 관심이 많아 수년 전 독일 학자들(Belitz(작고), Grosch, Schieberle)이 쓴 1000쪽이 넘는 분량의, 식품화학에서는 유명한 이 책의 영어판을 샀다. 워낙 설명이 잘 돼 있어 식품과 관련해 궁금한 게 있을 때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프림은 콩글리시일테니 크림(cream)이나 크리머(creamer)를 찾아봐야하나…?’







사진


색인에는 크림만 나와 있어 페이지를 찾아 앞뒤를 뒤적거리다 프림 항목을 발견했다. 정식 이름은 뜻밖에도 ‘coffee whitener’다. 직역하면 ‘커피 백화제(白化劑)’ 정도일 텐데 아무래도 이름을 잘못붙인 것 같다.

“커피 크림이나 농축우유(연유)처럼 쓴다. 유제품과는 달리 식물지방을 쓴다. 보통 카제인나트륨이 단백질 성분이다.”

이런 간단한 설명과 함께 전형적인 프림 처방이 소개돼 있다(사진 참조). 인터넷백과사전인 위키피디아도 봤는데 더 볼게 없다. 다만 프림의 어원을 알 수 있었는데 1952년 나온, 크림 분말과 유당, 우유단백질을 섞은 크리머의 상표명이 ‘Pream'이라고 한다. 또 유제품이 아닌 크리머, 즉 우리가 아는 프림은 1958년 처음 나왔다고 한다.

크리머를 개발한 이유는 쉽게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다. 우유나 커피 크림, 또는 농축우유는 액체이기 때문에 번거롭다. 따라서 크림을 건조시켜 분말은 만든 건데 문제는 건조를 거치면서 맛이 안 좋게 변하고 가루가 물에 잘 안 녹아 덩어리진다는 것.

결국 연구자들은 다른 처방을 찾았고 6년 만에 크림지방 대신 식물지방, 유당 대신 포도당, 우유단백질 대신 카제인나트륨을 쓰고 몇 가지 원료를 더 해 우유의 풍미는 유지하면서도 물에 잘 녹고 냉장보관하지 않아도 되는 오늘날 프림의 원조를 선보였다. 게다가 재료비는 오히려 덜 들었다.





●카제인나트륨은 우유단백질 정제한 것


그렇다면 김태희 씨를 내세운 신제품의 차별화 포인트, 즉 카제인나트륨 대신 무지방 우유를 썼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우유에서 카제인이 주성분인 우유단백질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수산화나트륨 같은 알칼리 처리를 하고 80~90℃로 열을 가하면 카제인 단백질만 녹아나온다. 이 용액을 건조해 분발로 만든 것이 카제인나트륨이다. 즉 정제된 우유 단백질이다. 광고에서 ‘화학적 합성품’이라고 쓴 표현이 시정명령을 받은 이유다.

식품도 산업으로 넘어가면 원료의 품질이 일정하고 가공이 쉬운 게 선호되기 마련이므로 혼합물(유당과 유장단백질이 포함된)인 천연 카제인보다는 정제된 카제인나트륨이 즐겨 쓰인다. 신제품은 이런 처리가 안 된 좀 더 천연에 가까운 원료(무지방우유는 카제인인 주성분인 혼합물이므로)를 쓴다는 얘기다. 그런데 이게 큰 의미가 있을까.

기자가 보기에 우유를 천연지수 100, 기존 프림을 0이라고 했을 때 차별화를 강조하는 이 제품은 기껏해야 5나 10 정도가 아닐까 한다. 어차피 프림이라는 게 여러 원료를 섞어서 우유나 크림의 효과를 낸, 한마디로 ‘손이 많이 간’ 제품이기 때문이다. 분유를 타본 사람은 알겠지만 프림처럼 가루가 물에 스르르 녹게 만든다는 게 유화제 같은 첨가물을 넣지 않고서는 안 되는 일이다.

물론 기자가 기존 프림을 감싸려고 이런 얘길 하는 건 아니다. 기존 회사도 오십보백보인데 프림 포장지에 ‘식물성’이라고 강조한 걸 보면 알 수 있다. ‘동물성’보다 ‘식물성’이 건강에 좋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막연한 생각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사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과학기자들조차 이런 생각을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래서 버터는 몸에 안 좋으니 식물기름으로 만든 마가린을 먹으라고 권하곤 했다. 지금 그랬다가는 고소당할 일이다.





●식물경화유가 주성분




물론 식물기름은 대체로 동물기름보다 건강에 좋다. 특히 불포화지방산의 밸런스가 뛰어난 들기름 같은 경우가 그렇다. 그러나 마가린의 식물기름은 그냥 기름이 아니다. 식물경화유다. 경화유(硬化油), 즉 딱딱하게 만든 기름이란 말인데, 영어로는 ‘hydrogenated oil’로 직역하면 ‘수소화된 기름’이다.

즉 지방분자의 탄소 사이에 있는 시스형 이중결합에 수소를 붙여 단일결합으로 만들어준 것이다. 분자에 이중결합이 있어 수소가 더 붙을 여지가 있는(즉 수소가 아직 포화되지 않은) 지방을 불포화지방, 이중결합이 없어 수소가 더 붙을 여지가 없는(따라서 수소가 포화된) 지방을 포화지방이라고 부른다.

시스형 이중결합이 있으면 분자가 구부러져 제멋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상온에서 액체인 반면 막대 같은 구조의 포화지방은 일정하게 배치돼 고체로 존재한다. 또 이중결합 부분은 산소의 공격을 받아 산화되면서 분자가 깨지거나 변형될 수 있지만(이를 산패된다고 한다), 포화지방은 안정하다.

결국 식물기름을 가공해 안정한 딱딱한 덩어리를 만든 게 마가린이다. 경화과정을 거치면 어차피 포화지방이 되는 것이므로 그게 식물에서 왔건 동물에서 왔건 의미가 없다. 게다가 이 과정에서 반응이 일어나다가 다시 되돌아가 이중결합이 만들어지는 경우는 트랜스형이 생길 수 있는데(자연에서는 모두 시스형이다) 이 트랜스지방이 포화지방보다 몸에 더 나쁘다는 얘기는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마가린은 식물성이므로 버터보다 좋다는 게 말이 안 되는 이유다. 기자가 왜 이렇게 장황하게 얘기하는가 하면 기존 제품이나 이번 신제품이나 프림에 들어간 식물지방이 바로 경화유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유 지방보다 좋을 게 없는 포화지방을 쓰면서(업체에서는 트랜스지방이 전혀 없다고 하니 그 부분은 넘어가더라도) 우린 카제인나트륨을 안 썼다고 하는 쪽이나 식물성을 강조하는 쪽이나 소비자를 무시하기는 마찬가지 아닐까.

말이 나온 김에 인스턴트 커피도 잠깐 보자. 얼핏 보면 그냥 원두를 갈아놓은 것 같다. 조금만 생각하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만일 그렇다면 커피를 내릴 때 필터에 남아있는 게 없을 테니까.

인스턴트 커피는 커피를 내려먹는 번거로움을 없애기 위해 원두에서 물에 녹는 성분만 빼낸 뒤 다시 2~3밀리미터 크기의 과립으로 만든 것이다. 고온에서 날아간 향기성분을 다시 채우는 등 꽤 복잡한 과정이다. 거기다 함께 들어있는 설탕 역시 정제도가 가장 높은 백설탕이다. 조제커피는 단순한 제품으로 보이지만 사실 상당한 손이 간 가공식품인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조제커피를 먹지 말자는 건 아니다. 카푸치노나 카페라테 한 잔을 마시려면 조제커피 수십 봉지에 해당하는 4000원은 있어야한다. 요즘은 테이크아웃으로 이런 커피를 마시는 젊은 사람들도 많지만 기자만 해도 카페에서 마실 일이 있지 않는 한 ‘돈이 아까워서’ 거의 사먹지 않는다.

사실 식품이 산업화가 안 됐다면 대중들이 어떻게 부담 없이 커피를 마시고 초콜릿을 먹을 수 있었겠는가. 다만 조제커피를 팔면서 (오히려 침묵해야 할) 건강과 관련된 문제를 쟁점으로 내세우는 건 난센스가 아닐까.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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