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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과 동백꽃






4월 중순과 하순은 일 년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시기가 아닌가 한다. 목련, 벚꽃, 진달래, 개나리가 활짝 피고 연둣빛 새잎이 나면서 줄기가 반투명하게 비친다. 장미꽃이 피는 5월이 계절의 여왕이라지만 이때는 녹음이 너무 과하다는 인상을 준다.

4월의 꽃 가운데 기자는 벚꽃을 가장 좋아하는데 수형이 아름다운 벚나무 가지가지에 수천송이가 피어있는 모습도 일품이지만 봄바람에 흩날리는 꽃잎에서는 삶의 무상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유전자 하나 망가져도 꽃 구조 변해

사진


기자는 수년 전 뒤늦게 박사과정에 들어갔는데 그 뒤로 벚꽃을 더 좋아하게 됐다. 전공이 식물분자유전학, 즉 식물유전자의 기능을 밝히는 분야였는데 기자는 애기장대라는 작은 식물의 개화 관련 유전자를 연구했다. 그런데 이 유전자가 개화 시기뿐 아니라 꽃 구조에도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꽃 전반에 대해 공부해야 했다.

꽃은 네 겹으로 이뤄져 있는데 바깥에서부터 꽃받침, 꽃잎, 수술, 암술이 동심원을 이룬 모양새다. 꽃이 활짝 피면 꽃받침은 뒤로 밀리기 때문에 꽃잎이 맨 바깥층인 것처럼 보인다. 식물유전학자들은 꽃 구조가 비정상적인 돌연변이체를 연구해 꽃 구조가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를 연구했는데 그 결과 1990년대 ‘ABC 모형’이라는 아름다운 이론을 만들어냈다.

즉 꽃 구조는 A, B, C 유전자의 조합으로 결정되는데 A유전자는 바깥쪽 두 층에서, B유전자는 가운데 두 층에서, C유전자는 안쪽 두 층에서 발현, 즉 단백질을 만든다. 그 결과 A단백질만 있는 맨 바깥층은 꽃받침이 되고, A와 B단백질이 있는 두 번째 층은 꽃잎, B와 C단백질만 있는 세 번째 층은 수술, C단백질만 있는 맨 안층은 암술이 된다는 것.

따라서 A나 B 또는 C유전자가 고장나면 이상한 꽃이 나온다(사진). 예를 들어 A유전자가 고장나면 C유전자가 모든 층에서 발현된다(A유전자와 C유전자는 라이벌이다). 그 결과 암술-수술-수술-암술로 이뤄진(즉 꽃받침과 꽃잎이 없는) 꽃이 나온다! C유전자가 고장나면 더 이상한 꽃이 나오는데 꽃받침-꽃잎-꽃잎-꽃받침이 아니라 꽃받침과 꽃잎이 수없이 반복된 구조가 나타난다. 우리가 겹꽃이라고 부르는 꽃잎이 많은 꽃은 C유전자가 비정상인 식물체라고 보면 된다.






기자가 가장 깊은 인상을 받은 애기장대 돌연변이는 PAN이라는 유전자가 망가진 경우로 꽃을 대충 봐서는 보면 어디가 문제인지 모른다. 실제로 네 가지 구조를 온전한 형태로 다 갖추고 있다. 다만 그 개수가 바뀌는데 정상 애기장대꽃이 4-4-6-2인 반면 변이체는 5-5-5-2다(사진). 즉 꽃받침과 꽃잎은 하나씩 늘어나고 수술은 하나가 줄어든다. 애기장대는 십자화과(科)에 속하는 식물인데 꽃잎이 네 장, 즉 십자(十字) 형태로 나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논문에서 저자들은 원래 꽃의 원형은 꽃잎이 다섯 장인데 진화과정에서 십자화과 식물에서는 PAN유전자가 꽃잎의 수를 한 장 줄이는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많은 식물이 꽃잎이 다섯 장이다.


 



●꽃 한 송이의 기쁨


비록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2년 만에 기자로 돌아왔지만 이때의 경험은 꽃을 바라보는 시각을 180도 바꿔놓았다. 예전에는 꽃잎이 겹겹이 싸여 풍성한 장미꽃을 좋아했지만 이제는 소박하더라도 꽃잎 5장짜리 홑꽃 장미가 눈길을 끈다. 꽃 자체는 별로라고 생각했던 벚꽃도 꽃잎 5장이라는 원형이 보존돼 있다는 사실에 더 애정이 간다.

기자의 집에는 십 수 년 전 들여온 동백이 있는데 겨울 내내 꽃을 피워 큰 즐거움을 준다. 그런데 이것도 겹꽃이라는 사실이 ‘눈에 들어온’ 다음부터 관심이 시들해졌다. ‘오리지널’ 동백은 꽃잎이 5~7장인 홑꽃이다.

그런데 며칠 전 아침 어머니가 꽃 한 송이가 피었다며 와서 보라신다. 꽃들이 다 떨어진지 보름은 된 것 같은데 미처 피지 못한 꽃봉오리가 있었나보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인가….’ 너무 좋아하시기에 마지못해 베란다로 가서 보니 평균 크기보다 작은 분홍빛 꽃 한 송이가 활짝 펴 있다.










그런데 주변의 칙칙한 잎들이 눈에 들어왔다. 사실 이 동백나무는 수년 전부터 병에 걸렸는지 잎이 곰팡이가 핀 것처럼 칙칙해지면서 몸 상태가 말이 아니다. 원래 동백 잎은 왁스층이 두터워 빤질빤질한 게 특징인데 손을 대기도 꺼려질 정도다. 아마 광합성도 제대로 못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상록수임에도 새잎이 많이 돋아났다. 물끄러미 꽃을 보다가 문득 지금 병든 잎들을 없애면 새잎이 감염되는 걸 막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금요일 퇴근길에 기자는 가게에 들러 전정가위를 샀다.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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