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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의 뿌리, 안데스 산맥을 찾아서


한반도에 태백산맥이 있다면 남아메리카에는 안데스 산맥이 있다. 총 길이 7000km, 평균 해발고도 4000m에 이르는 이 거대한 산맥은 남아메리카의 서쪽 해안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남아메리카에서 안데스 산맥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구 최대의 열대우림을 만든 아마존 강은 안데스 산맥에서 녹은 눈에서 비롯됐다.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정도로 높은 산세는 독특하고 화려한 잉카 문명의 배경이 됐다. 안데스 산맥에는 길고 험난한 산세만큼이나 곳곳에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 있다. 3개월간 남아메리카에서 지내면서 찾은 다양한 자연경관과 기후, 그리고 그 속의 사람 이야기를 풀어본다.








[➊ 안데스 산맥 남쪽파타고니아 고원에 있는 모레노 빙하는 만년설이 굳어 형성됐다.]



[➋ 중력을 이기지 못한 빙하가 호수 위로 떨어지는 모습. 이곳에서는 빙하가 낙하하는 장면을 눈앞에서 볼 수 있다.]



[➌ 모레노 빙하를 품고 있는 파타고니아 고원은 빙하의 침식으로 형성된 긴 협곡이 절경을 이룬다.]
청록빛 거인 페리토 모레노 빙하
사람들은 남아메리카하면 따가운 햇살과 후덥지근한 기후를 주로 떠올린다. 하지만 안데스 산맥의 높은 봉우리는 만년설로 덮여 있다. 녹지 않고 단단하게 얼어붙은 만년설은 빙하가 됐고 남극과 같은 기후를 만들어 냈다. 산꼭대기 위에 빙하라니! 필자는 안데스 탐험의 첫 여행지로 주저 없이 모레노 빙하를 선택했다. 브라질에서 버스를 타고 22시간을 달려 안데스 산맥의 남쪽(아르헨티나)에 도착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안데스 산맥과 대서양의 경계에 있는 파타고니아 고원에 올랐다.

파타고니아 고원 위에서 만난 모레노 빙하는 거대함 그 자체였다. 빙하의 높이는 무려 1km에 달하고, 너비는 4km에 이르렀다. 오래된 빙하는 하루 평균 2m씩 강 쪽으로 흘러내려왔다. 빙하가 눈이 녹아 만든 호수에 다다르면 한쪽 귀퉁이 부분이 쩍하고 갈라지면서 천둥 같은 소리와 함께 호수 위로 떨어져 내렸다. 페리를 타고 멀리서 빙하를 바라보는 다른 빙하 지역과 달리 이곳은 호수 주변에 전망대가 있어 빙하가 붕괴되는 장면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다.

모레노 빙하는 독특하게 청록색을 띤다. 하얀 눈과 달리 빙하가 청록색인 이유는 눈보다 빛이 덜 산란되기 때문이다. 눈 입자는 20%의 고체 알갱이와 80%의 공기로 이뤄져 있다. 이 안으로 빛이 들어오면 빈 공간에서 산란이 많이 돼 하얀색을 띤다. 반면 큰 압력으로 압축된 빙하는 90%의 고체 알갱이와 10% 정도의 공기로 이뤄져 있다. 빙하 안에서 빛은 충분히 산란하지 못하고 푸른색만 산란시킨다.

모레노 빙하를 품고 있는 파타고니아 고원도 관광지로 이름이 높다. 화산활동으로 생긴 파타고니아 고원은 원주민의 전설 속 거인인 파타곤에서 이름을 따왔다. 지형이 워낙 험준하고 기후 또한 좋지 않아 19세기 후반에 들어서야 인간의 발길이 닿았다고 한다. 하지만 빙하가 할퀴고 가면서 형성한 긴 협곡은 그야말로 절경이었다. 파타고니아에서 안데스 산맥 서쪽 자락에 있는 토레스 델 파이네는 오묘한 형상의 봉우리들이 기괴한 장관을 연출했다. 빙하가 만든 에메랄드빛 호수는 여행객들의 심신을 달래줬다. 왜 내셔널지오그래픽이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50곳’으로 선정했는지 알 것 같았다.





건조한 사막 속에서도 피어나는 생명
칠레 남부에서 아타카마 사막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이동거리가 총 2400km로 장장 40시간이 걸렸다. 워낙 이동시간이 길다보니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풍경이 펼쳐졌다. 이곳 버스에서는 비행기처럼 식사도 나오고 중간 경유지에서는 운전사도 교체한다.








[아타카마 사막은 소금과 탄산칼슘이 진흙과 함께 말라붙어 있다. 소금이 햇빛을 받아 반짝거린다.]

모레노 빙하가 ‘풍요로운 물의 나라’라면 아타카마 사막은 모든 습기를 빼앗기고 버려진 ‘불모의 땅’이다. 아타카마 사막은 안데스 산맥 서쪽 태평양 연안에 있는 사막으로 지도에서 보면 남아메리카 서쪽에 움푹 패인 곳 주변이다. 이곳은 서쪽 대양에 흐르는 한류의 영향으로 상승 기류가 발달하지 못해 강수량이 적다.

아타카마 사막은 2000만 년 동안 건조 상태가 유지돼 왔다. 4년 전 2mm의 소나기가 온 것이 전부다(예외적으로 지난해 7월에 이례적으로 폭설이 내려 기후변화의 증거를 보여주기도 했다). 습기 없이 오직 바람에 의한 풍화 작용만 일어나기 때문에 아타카마의 풍경은 흡사 달의 표면과 비슷하다. 그래서 이름도 ‘달의 계곡’이다. 잘게 부서진 모래 입자는 곱지만 뾰족해서 디디기가 무척 힘들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거리는 것은 보석이 아닌 소금 덩어리. 사막 위를 걷고 있으면 소금이 ‘사각’거리며 깨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타카마 사막은 소금과 탄산칼슘이 많은 진흙이 말라붙어 있는 호수와 소금의 퇴적층으로 덮인 지역이 많다.

살아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 같지만 이곳에도 생명은 숨 쉬고 있다. 아타카마 사막에는 낙타과 포유류 동물인 야마가 산다. 양과 낙타를 합쳐놓은 것 같은 이 동물은 계곡 깊은 바닥에서 자라는 풀을 먹고 산다. 이곳 사람들은 야마의 등에 짐을 싣기도 하고 털로 옷이나 카펫을 만든다. 분홍빛 깃털이 아름다운 플라밍고(키 1.2m 정도의 대형 조류)도 만날 수 있다. 플라밍고는 바닷물보다 더 짠 소금호수에 사는 플랑크톤을 먹는다.

동물뿐 아니라 땅도 살아 숨 쉰다. 아타카마에서는 끊임없이 간헐천에서 수증기가 뿜어져 나온다. 태평양의 해양지각인 나즈카 판과 대륙지각인 남아메리카판이 충돌해 안데스 산맥을 만든 이후에도 여전히 조산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흔적이 라스카르 화산에 남아 있다. 약 2만 5000년 전 대규모 폭발을 일으킨 라스카르 화산은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활동해 최근에는 1993년에 폭발했다. 이때 나온 화산재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날아가 떨어졌다고 한다.

아타카마의 현무암과 모래 그리고 소금이 만들어낸 경치는 현실과는 무척 동떨어져 보였다. 초현실주의의 대표적 화가인 살바도르 달리는 80여 년 전 이 풍경을 담아 작품 ‘기억의 지속’을 남겼다. 그의 이름이 붙은 언덕을 지나고나니 현실적이지 않게만 보였던 그의 그림이 조금은 이해가 됐다.








[아타카마 사막은 근처 바다에서 흐르는 한류의 영향으로 상승기류가 발달하지 못해 강수량이 적다. 매우 건조한 기후를 보이는 이곳은 달의 표면을 닮았다는 뜻에서 ‘달의 계곡’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곳곳에서 간헐천이 수증기를 뿜어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최근까지 이곳이 화산활동이 활발했음을 보여준다.]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많이 볼 수 있는 야마는 아타카마 사막에서도 만날 수 있다.]



[티티카카 호수에는 갈대로 만든 섬이 떠 있다. 섬 위에 집을 짓고 사는 이 이색적인 풍경은 타 부족의 침략을 피해 호수로 쫓겨나야 했던 우로 족의 가슴 아픈 역사에서 비롯됐다.]



[산비탈에 만든 모라이(잉카의 계단식 밭)의 모습. 열대지역 농작물을 선선한 기후에 적응시키기 위해 고안된 형태다.]



[해발 3812m의 고지대에 있는 티티카카 호수는 면적이 매우 커서 끝이 보이지 않는다.]



[페루에서 만난 잉카족의 후예들. 아시아에서 온관광객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이 귀엽다.]
거친 환경을 개척한 잉카의 후예들
다시 버스를 타고 북쪽으로 향했다. 남위 15도 페루에 이르면 세상에서 가장 높은 호수를 만날 수 있다. ‘티티카카’라는 이름의 이 호수는 우리나라 충청도를 품을 만큼 크다. 호수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수면에 비친 구름으로 그 끝을 짐작해야 했다. 해발 3812m의 티티카카 호수는 마치 하늘을 품고 있는 것 같다. 과연 ‘산 위의 바다’라 부를 만했다.

이곳 주민들은 특이하게도 ‘물 위에서’ 산다. 기둥을 박아 지은 단순한 수중 가옥이 아니다. 물 위에 1~1.5m 높이로 갈대를 쌓아 올려 일종의 인공 섬을 만들었다. 이 섬의 이름은 ‘매일 새로워진다’는 뜻의 ‘우로스’다. 우로스 섬에 사는 우로 족은 원래 뭍에서 살았다. 하지만 기원전 1세기 경 주변 부족의 침략을 받으면서 티티카카 호수로 피난을 오게 됐다. 이후에는 잉카와 스페인제국의 힘에 밀려 돌아가지 못했다. 지금은 많은 이들이 도시로 떠나고 일부만 남아 있다. 전통을 지키며 섬을 이어가고 있는 모습이 부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전히 위태로운 생활을 하는 모습에 안쓰러웠다.

과거 잉카인들은 평균 3000m 이상의 고산지대 환경에 적응하며 살았다. 티티카카 호수 근처에는 잉카의 수도였던 쿠스코가 있다. 잉카의 후예들은 지금도 이곳의 고산지대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간다. 이들은 가운데가 깊어지는 원형 형태의 계단식 밭(모라이)을 만들어 곡물을 재배한다. 이곳 기온은 연중 20℃ 안팎으로 선선하기 때문에 재배할 수 있는 농작물이 제한적이다. 그래서 잉카의 후예들은 열대지역의 농작물을 가져다가 제일 따뜻한 맨 아래층에 심은 뒤 차츰 위에 있는 밭으로 옮겨 심는 방식으로 선선한 고지대 기후에 적응시켰다. 이렇게 해서 성공한 대표적인 농작물이 옥수수다. 이처럼 잉카인들이 안데스 산맥 위에서 화려한 문명을 꽃피울 수 있었던 데는 거친 환경에 굴복
하지 않는 끈기와 지혜가 있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도 벌써 1년이 지났다. 호스텔에서 만난 어느 칠레 꼬마의 미소가 떠오른다. 10년 내에 꼭 다시 한 번 방문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었다.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지금,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불안해지고 부담감을 느낄 때가 종종 있는데, 그럴 때마다 안데스 산맥에서 만난 사람들의 미소와 여유를 떠올린다. 거친 환경을 이겨내고 즐겁게 살아가는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며 오늘도 힘을 내 본다.

 

 



글 : 김윤미
이미지출처 : 사진 최경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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