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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에도 얼굴이 탈까?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장돌뱅이 허 생원은 가던 길을 멈추고 메밀밭 앞에 섰다. 그리고 또 예의 그 이야기를 꺼내려 한다.

“달밤이었으나 어떻게 해서 그렇게 됐는지 지금 생각해두 도무지 알 수 없어.”
“잠깐! 그만, 그만 좀 하게! 이제 2011년이라고! 자네 이야기는 마르고 닳도록 들어서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더 많을 걸세.”
“그래두 달밤에는 그런 이야기가 제격인데…….”

실망한 표정의 허 생원에겐 미안한 일이다. 하지만 조 선달은 더 이상 허 생원의 ‘메밀꽃 필 무렵’을 들어줄 수가 없었다. 아무리 좋은 길동무라도 늘 같은 이야기를 하면 지치는 법이다.

“그나저나 달이 무척 밝네 그려. 요즘에는 달밤에 나와서 산책하는 사람도 많구먼.”
“그러게. 저들을 보니 보따리를 풀고 장사하고 싶은 마음마저 생겨.”

달빛을 감상하는 허 생원과 달리 조 선달은 ‘뭘 좀 팔 수 없을까’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 조 선달의 머리에 번개 같은 생각이 스친다.

“선크림(자외선 차단제)을 팔면 어떤가? 저렇게 달빛이 밝으니 얼굴이 탈 수도 있겠지?”
“달빛에 얼굴이 탄다고? 나 원 참! 그런 소리는 처음 듣네.”
“그럴 수도 있지 않은가? 달이 저렇게 해처럼 밝은데 살이 탈 수도 있지. 게다가 달빛은 햇빛을 반사해서 지구로 들어오는 거라고 하던데……. 햇빛에 들어 있는 자외선 같은 것이 해롭다는 건 사람들이 잘 알고 있으니까!”
“그것 참! 자네 말대로라면 밤에도 선크림을 바르고 다녀야겠구먼. 선크림 만드는 회사는 아주 떼돈을 벌겠어. 그런데 그게 말이 되나?”

두 사람이 옥신각신 하는 사이 동이가 지나가게 됐다. 이공계 출신인 동이는 두 사람의 대화에 이끌려 가던 길을 멈추게 됐다. 그리고 말을 건넸다.





“저기 어르신들,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요. 달빛을 받아도 얼굴이 탈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치? 내 말이 맞지? 난 아무래도 이상하더라니까!”
“어린놈 말을 어떻게 믿어! 스키장 다녀오면 사람들이 새카맣게 타는 건 어떻게 설명할 게야? 그것도 다 눈에 반사된 햇빛 때문 아닌가?”
“예, 제가 하나씩 설명드리겠습니다. 우선 햇빛을 받으면 살이 타는 건 우리 피부에 있는 ‘멜라닌 세포(melanocyte)’ 때문인데요. 이 세포가 어두운 색 물질, 멜라닌을 많이 만들어내서 그런 겁니다.”
“멜라닌이라는 게 생긴다면 이유가 있을 게 아닌가?”
“맞습니다, 어르신. 멜라닌은 햇빛에 포함된 자외선을 흡수합니다. 그래서 자외선이 피부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지 못하게 막지요.”
“오! 우리 몸이 햇빛에서 몸을 보호하려는 거로군. 그거 놀라운데?”
“이런 답답한 사람! 지금 그게 우리한테 중요한 건가? 그런 건 됐고! 빨리 달빛에 안 타는 이유나 설명해 봐!”

조 선달은 갑작스럽게 끼어든 동이가 못마땅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정보를 아는 건 장사꾼의 필수 덕목이다. 그는 의심이 가득한 눈빛으로 동이의 다음 대답을 기다린다.

“물론 햇빛을 받아 피부가 타는 걷은 반사된 빛으로도 가능합니다. 겨울에 스키장을 다녀오면 여름날 못지않게 얼굴이 타죠. 결국 여름철에는 강한 직사광선을 받고, 겨울철 스키장에는 눈에 반사된 햇빛에 의해 얼굴이 타는 건 맞습니다.”
“그래. 그러니까 달빛에도 피부가 탈 수 있지 않겠냐는 말일세!”
“물론 달빛도 햇빛이 반사된 빛이라는 건 맞습니다. 그런데 달빛으로는 피부가 타지 않습니다. 반사된 햇빛의 양이 피부를 태울 정도로 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허 생원은 자기의 생각에 맞는 답을 내놓은 동이가 괜히 듬직하게 여겨졌다. 응원하는 마음으로 동이의 말에 집중했다.

“그리고 어르신, 스키장 눈에 들어온 햇빛은 85%나 그대로 반사되거든요. 그러니까 햇빛을 직접 받는 것처럼 피부에 영향을 많이 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달에 들어온 햇빛은 약 7% 정도만 반사돼요. 달의 표면에 있는 암석이 햇빛을 많이 흡수하기 때문이죠. 그러니 달빛에 얼굴이 타기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의 말을 들은 조 선달은 풀이 죽었다. 좋은 장사거리를 발견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사실 우리가 낮에 사람이나 물건을 보는 건 사물에 반사된 햇빛을 보는 건데요. 만약 햇빛의 강도와 상관없이 모든 햇빛에 피부가 탄다면 사람들이 모두 흑인처럼 새카맣게 탔을지도 몰라요.”
“알았네. 선크림 말고 다른 걸 생각해야겠어.”
“허허. 그래도 자네의 상상력 하나는 알아줘야겠네. 달빛에 얼굴이 탄다고 생각하다니! 자넨 꼭 성공할 거야.”

밤이 깊어가는 사이 세 사람은 달빛에 취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이런 달빛 아래라면 허 생원의 이야기도 들어줄 수 있을 것만 같다. 동이가 왜 떠돌이가 됐는지도 들어볼 수 있겠지. 귀뚜라미가 울고, 그윽한 달빛이 비추는 가을밤. 세 사람의 발걸음이 더욱 다정해졌다.

 

 

 



박태진 동아사이언스 기자 tmt198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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