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쿼크의 아버지, 언어학에 빠지다






현대 양자역학의 기틀을 다진 폴 디랙은 말이 없는 것으로 유명했다. 아래는 1929년 그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한 유명한 기자와 한 인터뷰다(위스콘신 저널 4월 31일자에 실렸다는 걸로 봐서 신빙성은 낮다).

기자: 교수님 이름 앞에 글자가 몇 개 있더군요(디랙은 논문에 자신의 이름을 P. A. M. Dirac으로 표기했다). 어떤 특별한 걸 나타내나요?
디랙: 아뇨.
기자: 그렇다면 제가 임의대로 써도 된다는 말인가요?
디랙: 네.

기자: 제가 P. A. M. 을 푸앙카레 알로이시우스 무솔리니(Poincare Aloysius Mussolini)라고 말해도 괜찮습니까?
디랙: 네(실제로는 Paul Adrien Maurice다).
기자: 좋습니다! 우린 점점 마음이 맞는군요! 자 박사님, 이제 박사님 연구에 대해 간단하게 언급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디랙: 아뇨.

기자: 좋습니다. 그렇다면 제가 이런 식으로 써도 될까요? ‘디랙 교수는 수리물리학의 모든 문제를 풀었지만, 베이브 루스의 평균 타율을 계산하는 더 나은 방법을 찾지는 못했다.’
디랙: 네.

디랙이 이런 사람이 된 건 아버지 때문이라고 한다. 스위스 태생인 아버지 찰스 디랙은 20살 때 영국으로 건너와 프랑스어를 가르치며 살았다. 그는 영어에 대한 프랑스어의 우수성을 지나치게 강조했는데 식사 시간 때는 둘째 아들 폴과 겸상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때 이들은 프랑스어로만 말해야 했다고. 까다로운 아버지 앞에서 극도로 긴장한 폴은 말을 한 마디도 안 했고 늘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디랙은 프랑스어를 말할 수 있었지만 훗날 프랑스에 갔을 때도 결코 프랑스어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언어천재였지만 글쓰기 장애에 시달려

디랙처럼 아버지 때문에 언어생활에 콤플렉스가 생긴 물리학자가 한 명 또 있다. 20세기 후반 이론 물리학 분야에서 리처드 파인만과 쌍벽을 이룬 머리 겔만이 그 주인공이다. 겔만은 파인만 만큼 대중적으로 유명하지는 않지만 그가 제안한 기본입자는 안 들어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양성자나 중성자를 이루는 기본입자인 ‘쿼크’의 개념을 만들고 이름을 붙인 사람이 바로 겔만이다.

1929년 미국 뉴욕에서 태어난 겔만은 3살 때 큰 수의 곱셈을 암산으로 할 수 있었던 영재였다. 그는 15살에 예일대에 입학했고 19살에 MIT 대학원에 들어가 21살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리고 입자물리학 이론 영역에서 눈부신 업적을 거둬 40살인 1969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으로 노벨상을 받지 않은 것처럼 그도 쿼크 때문에 탄 게 아니라 그 이전의 업적으로 받았다!(겔만은 1964년 쿼크의 존재를 제안했는데 1969년까지도 물리학계는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여기까지 보면 겔만이 승승장구한 삶은 산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도 않다. 겔만의 아버지 아서 겔만은 오스트리아 빈에서 철학과 수학을 공부하던 수재였지만 집안 사정으로 미국으로 이민을 온다. 언어 능력도 탁월했던 그는 뉴욕에서 ‘아서 겔만 언어지도학교’를 세워 이민자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그러나 대공황으로 학교가 문을 닫자 그는 결국 은행의 경비원을 하면서 홀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연구했다.

부계의 영향 때문인지 머리 겔만 역시 언어 능력이 탁월해서 7살 때 철자 알아맞추기 대회에 나가 12살 아이들을 제치고 우승하기도 했다. 당시 그가 맞춘 단어는 ‘subpoena’다. 이 단어를 처음 본 사람들도 있을 텐데 ‘소환장’이란 뜻이다.

학교생활이 너무 지루해 자신만의 신문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의 글을 본 아버지는 “이걸 글이라고 쓴 거냐?”며 불같이 화를 내곤 했다. 결국 이런 경험들이 반복되면서 언어 천재이기도 했던 겔만은 ‘글쓰기 장애’에 시달리게 된다.

글쓰기 장애는 그의 삶에도 큰 장애가 됐다. 그는 예일대 학부 졸업논문(별로 대단한 것도 아닌)을 쓰지 못해서 결국 대학원에 진학하지 못했다. 다행히 (당시는 지명도가 낮은 학교였던) MIT의 빅터 바이스코프 교수가 겔만을 구제했다. 어릴 때 라틴어, 이탈리아어, 스페인어를 통달했던 겔만은 MIT에서는 술집을 전전하거나 중국어와 티벳어를 공부하기도 했지만 2년 만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의 천재성에 풀이 죽어 물리학을 포기한 동급생이 있을 정도였다.

바이스코프 교수는 겔만을 프린스턴고등연구소의 방문연구원으로 추천했지만 역시 글쓰기 장애로 박사학위 논문을 쓰지 못해 6개월을 끌다가 마침내 논문을 완성한다. 그 뒤 겔만은 본격적인 입자물리학 연구를 통해 눈부신 업적을 쌓았고 1969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했다.

수상연설 중 참석했던 스웨덴 국왕이 졸자 겔만은 갑자기 스웨덴어로 말을 바꿔 국왕이 깜짝 놀라 잠을 깼다는 일화도 있다. 역시 고질적인 글쓰기 장애가 재발해 그는 수차례 연기를 하고도 결국 노벨상기념논문집에 제출할 글을 끝내 완성하지 못했다.

파인만과 라이벌 관계였던 겔만은 파인만의 책이 히트하는 걸 보고 1990년 자서전을 써보자는 한 출판사의 제안에 선인세까지 받았지만 2년이 넘도록 책을 완성하지 못하고 편집자가 바뀌는 소동을 겪다가 스트레스로 가벼운 심장마비를 일으키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책을 썼지만 이번엔 출판사가 마음에 안 들어 해 결국 계약은 파기되고 1994년 소형 출판사에서 출간한다. 그의 자서전 ‘쿼크와 재규어’가 나온 과정이다.

입자물리학 연구를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한 겔만은 1980년대 들어 여러 분야의 연구자들이 모여 복잡계 현상을 연구하는 ‘산타페연구소’를 세우는데 참여했고 그 자신 1987년부터 현재까지 산타페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사진

 

 




●한국어 어순이 영어 어순보다 원조

10월 18일자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는 ‘The origin and evolution of word order(어순의 기원과 진화)’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논문이 실렸다. 놀라운 사실은 저자 두 사람 가운데 한 명이 바로 머리 겔만이라는 것. 올해 82세인 겔만이 언어학 분야의 논문을 썼다니 처음엔 잘못 본 게 아닌가 했다. 하지만 수십 가지 언어를 익힌 겔만이고 보면 이런 논문을 못 쓸 이유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들은 전 세계 2135개 언어의 어순을 조사해 비교분석했다. 어순은 주어(S), 목적어(O), 동사(V)가 어떤 순서로 배열되는가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어는 SOV(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영어는 SVO(I love you)다. 이 세 요소가 배열될 수 방법은 6가지(3!)인데 2135개 언어에서 앞이 두 가지 배열이 대부분을 차지한다(SOV가 1008개, SVO가 770개). 이 밖에 VSO(사랑한다 나는 너를)가 164개이고 VOS(사랑하다 너를 나는)가 40개, OVS(너를 사랑한다 나는)가 16개, OSV(너를 나는 사랑한다)가 13개 언어 존재했다.

과거 언어학자들은 SVO의 어순이 원조이고 여기서 SOV 등 다른 어순이 진화했다고 주장했다. 아마도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등 서구인들이 쓰는 언어의 어순이 SVO이다보니 이런 해석이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그 뒤 본격적인 언어 비교 연구가 진행되면서 어순의 기원이 논란이 되고 있다.

이번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언어를 어족별로 분류한 뒤 각각의 어족이 어떤 어순으로 이뤄져 있는지를 분석한 결과 SVO가 아니라 SOV가 어순의 원조라는 결론을 얻었다. 저자들에 따르면 한국어가 포함된 알타이어족이 어순의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어족으로 51개 언어 가운데 50개의 어순이 SOV다. 예외인 하나는 터키어 계열의 가가우즈어(Gagauz)로 루마니아 지방에서 쓰는 말로 루마니아어의 영향으로 SVO의 어순으로 바뀐 걸로 추정된다.

저자들은 파충류와 포유류의 비유를 통해 어순의 기원을 설명하기도 했다. 즉 포유류 4000여 종 가운데 알을 낳는 건 6종에 불과하지만 이들이 원형이라는 것. 진화상으로 가까운 파충류가 알을 낳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논리로 영어나 프랑스어가 속하는 인도-유럽어족의 경우 SVO가 좀 더 많지만(SOV도 있고 VSO도 있다) 가까운 어족인 아나톨리아어족은 모두 SOV다. 따라서 인도-유럽어족의 원형 역시 SOV라는 것.

아무튼 여러 정황 증거를 토대로 볼 때 어순은 SOV에서 SVO로, 그리고 SVO의 일부가 VSO 또는 VOS로 진화해 갔다고 한다. 한편 드문 어순인 OVS와 OSV는 SOV에서 직접 진화했다고 한다.

입자의 기원과 진화를 연구해온 겔만이 들려주는 어순의 기원과 진화 이야기가 재미있으면서도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한다.

 

 



 

 



강석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suk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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