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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짜 과학저술가의 좌충우돌 게놈 해독 체험기



사진


“오늘날의 유전학은 굉장히 저해상도 사진이지만, 일을 시작하는 유일한 방법은 일단 시작하는 것뿐입니다.”
- 제이미 헤이우드, ‘나와 같은 환자들(PatientsLikeMe.com)’ 운영자.

2010년 4월 27일 기자는 미국 케임브리지에서 열린 ‘GET 컨퍼런스'를 취재하고 있었다. GET란 Genomes(유전체), Environments(환경), Traits(특성)의 머리글자를 따온 말인데, 외모와 질병 같은 개인의 특성은 그 사람이 지닌 게놈과 경험한 환경의 영향을 받은 결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06년 미국 하버드대 의대 유전학과 조지 처치 교수가 주도해 시작한 개인게놈프로젝트(Personal Genome Project, PGP)가 주최한 GET 컨퍼런스는 개인게놈 시대가 도래했음을 선언하는 자리였다. 개인게놈 시대란 한 사람이 갖고 있는 유전정보, 즉 염색체 23쌍을 이루고 있는 DNA 60억 염기쌍의 정보를 해독해 의학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 그 정보를 활용하는 시대다.

이 자리에는 개인게놈을 해독한 13명이 ‘개인게놈 개척자'로 초대됐는데 1953년 DNA이중나선 구조를 해독한 제임스 왓슨과 한국인 최초로 게놈을 해독한 차의과학연구원 김성진 원장과 함께 이 책의 저자 미샤 앵그리스트 듀크대 교수도 포함돼 있었다.

자그마한 키에 빡빡 깍은 머리, 잘 손질된 수염의 앵그리스트 교수는 다소 다혈질로 보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자리에서 사고를 쳤다. 전설적인 과학자 제임스 왓슨과 한판 붙었던 것. 말다툼이 어떻게 시작된 건진 모르겠지만 왓슨이 “별 볼일 없는 대학을 나온 주제에…”라는 식의 말을 했고 앵그리스트가 “이 인종차별주의자 같으니라고…”라며 맞받아쳤다. (제임스 왓슨은 2007년 한 인터뷰에서 “흑인은 지능지수가 낮다"는 요지의 발언을 해 물의를 일으켰고 결국 39년간 몸담았던 콜드스프링하버연구소를 떠났다.)

수백 명의 청중이 보는 앞에서 노인과 중년 사내가 얼굴이 뻘개져가지고 서로 삿대질을 하고 있고 키가 190cm가 넘는 거구인 처치 교수가 중간에서 이들을 말리느라 쩔쩔매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도대체 저 인간은 뭐하는 사람일까?" 아무리 화가 났더라도 아버지뻘인 노인(당시 왓슨은 82세, 앵그리스트는 46세), 그것도 생존한 과학자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에게 대드는 모습에 기자는 어리둥절했다. PGP-4인 그는(개인게놈프로젝트는 1차로 10명의 게놈을 해독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앵그리스트는 그 가운데 한 명이다.) 당시 개인게놈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바로 이 책이다.

미샤 앵그리스트 교수는 정말 괴짜다. 유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수년 간 연구를 하다가 '이게 뭐하는 짓인가’하는 생각이 들어서 때려치우고 뒤늦게 글쓰기 공부를 해서 과학저술가이자 대학에서 과학정책을 가르치는 교수가 됐다. 취미는 록밴드 공연. 생물학자인 아내와 딸 둘이 있다.






●개인게놈의 의미를 찾아서
2010년 11월 출간된 이 책은(원저명은 Here Is a Human Being: at the down of personal genomics)은 저자가 개인게놈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시점에서 자신의 게놈을 해독해 그 의미를 파악해보려고 노력하던 시점까지 있었던 일들을 생동감 있게 서술하고 있다. 주로 관련된 사람들을 만나 나눈 대화와 벌어진 사건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그 축은 역시 개인게놈프로젝트를 이끌고 있는 조지 처치 교수다.

특정 유전자의 특성을 밝히는 고전적인 유전학 연구를 했던 앵그리스트 교수는 한 사람의 유전자 전체를 안다는 게 어떤 의미일지를 몸소 체험하기 위해 이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금방 결과가 나올 줄 알았지만 의외로 프로젝트가 지지부진하면서 갈수록 초초해하는 그의 모습(책을 쓰기로 계약이 돼 있었다)이 여기저기서 드러난다.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2009년 말 자신의 게놈을 해독하는데 성공했지만 그 결과는 실망스럽게도 자신의 게놈을 몰랐을 때와 별로 다르지 않았다. 어마어마한 데이터에서 의미있는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 방법이 아직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60억 개나 되는 염기서열을 다 읽으려면 평생이 걸릴 것이다! 물론 데이터를 해석하는 소프트웨어가 몇 개 개발돼 있지만 개인게놈이 약속한 청사진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

결국 앵그리스트 교수는 책 말미에 “우리는 지금껏 게놈에 투자했지만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면 건강한 사람에게 어떠한 영구적 가치가 있는지 아직 거의 증명되지 않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렇다고 그가 개인게놈에 회의적인 건 아니다.

개인게놈 연구는 시작된 지 불과 10년도 안 된 분야이고 그나마 개인정보 공개를 둘러싼 윤리 문제로 연구비도 제대로 나오지 않아(때로는 연구 프로젝트에 제동이 걸리기도 해서) 당초 예상보다 발전 속도가 느릴 뿐이지 결국은 의학혁명으로 이어질 거라는 게 저자의 생각이다. 즉 “다음 몇 년 안에 게놈 해독은 태어나서 한 번만 받으면 되는 1회성 검사가 될 것이다”라고 저자는 예상하고 있다.

지금까지 개인게놈을 추상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면 이 책 속에서 여러 구체적인 사례를 접하며 게놈정보의 잠재력과 함께 한계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이 같은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어 정열을 불사르고 있는 미국의 많은 생명과학자와 투자자를 보면서 미국이라는 나라가 앞으로도 한참은 세계를 이끌겠다는 예감도 들 것이다.

다만 책에 너무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고 이야기도 툭툭 건너뛰는 곳이 많아 따라잡기가 어렵다는 점이 아쉽다. 또 사진이나 그림이 전혀 없기 때문에 이야기를 시각화하지도 못한다. 책을 읽다보면 곳곳에 등장하며 저자를 매료시키는 조지 처치라는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질 것이다. 그리고 이상하게도 저자의 모습은 별로 궁금하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이 책을 제대로 읽으려면 독자가 개인게놈 분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과학동아 ‘2010년 6월호 특집 ‘개인게놈 시대 온다'를 미리 읽고 이 책을 본다면 좀 낫지 않을까.

 

 



강석기 기자 suk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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