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척박사 연구소

척척박사 연구소과학이야기제목별로 보기해설이 있는 과학

해설이 있는 과학

최신 소식 속에 담긴 다양한 과학정보에 대한 해설입니다.

영하 40도에서도 물이 얼지 않는다



사진

 




수 년 전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석 교수가 라카토스상을 받았다는 기사가 화제에 올랐다. 헝가리의 저명한 과학철학자였던 임레 라카토스(Imre Lakatos)를 기려 만든 이 상은 1986년부터 매년 과학철학 분야의 책 가운데 한 권을 뽑아 저자에게 수상한다. 장 교수는 2004년 펴낸 ‘Inventing Temperature’라는 책으로 2006년 이 상을 받았다.

당시 기사에는 장 교수의 책을 ‘온도계에 담긴 철학'으로 번역해 혹시 한국어판이 나왔나 싶어 검색해 봤지만 없었다. 기자가 그럴듯한 한글판 제목을 만든 셈인데, 그 뒤 장 교수의 이 책을 언급하는 자료들은 여전히 이 제목을 쓰고 있다. 마치 한글판이 나와 있는 것처럼.

2010년 말 장하석 교수의 형인,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의 책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의 한글판이 나와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화제가 됐다. 문득 장하석 교수의 책은 어떻게 됐을까 궁금해 검색해봤는데 여전히 번역이 안 돼 있다. 매년 수천 권의 번역서가 나오는데 어떻게 이런 유명한 책이 여전히 번역이 안 되고 있을까.

결국 못 참고 작년 초에 Inventing Temperature를 주문했다. 부제 Measurement and Scientific Progress(측정과 과학적 진보)가 말해주듯이 책은 온도를 측정하는 지난한 역사를 되짚어가며 시작하고 있다. 1장의 제목은 Keeping the Fixed Points Fixed(고정된 점을 고정시키기)로 무슨 말인지 알쏭달쏭하다.

인내를 갖고 읽어보니 우리가 익숙한 섭씨나 화씨 같은 온도의 기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얘기하고 있는데 뜻밖에도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수백 년이 걸렸다. 예를 들어 섭씨의 경우 가장 널리 쓰인 고정된 점인 물의 어는점과 끓는점을 각각 0도와 100도로 잡고 눈금을 나눠 온도를 정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고정된 점이 실험에서는 들쑥날쑥했다는 것.

책에는 물의 끓는점을 정하게 된 과정을 자세히 다뤘다. 데워진 물에서 공기방울이 올라오기 시작할 때(96도 부근)를 끓는점으로 해야 하나, 격렬하게 올라올 때(100도 부근)를 끓는점으로 해야 하나 고민하던 18세기 과학자들의 실험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뒤 다양한 조건에서 실험하던 과학자들은 심지어는 200도가 돼서야 물이 끓는 경우도 발견했다. 훗날 과열(superheating)이라고 부르는 이 현상은 당시 과학자들을 곤혹스럽게 했다고.

1장 끝부분에는 과냉각수(supercooled water)를 언급하는데 용어에서 짐작하겠지만 0도에서도 얼지 않는 물로 심지어 영하 40도에서도 액체상태를 유지한다. 물의 어는점과 끓는점이라는 당연하게 보이는 현상이 결코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걸 고문서를 뒤져가며 파헤친 장 교수의 책이 주목받은 이유다.




●핵이 없으면 영하에서도 물 안 얼어

열역학적 관점으로 봤을 때 어느점 이하에서는 얼음이, 끓는점 이상에서는 수증기가, 그 사이에서는 물이 가장 안정한 상태다. 우리 주변을 봐도 당연히 그렇다. 그럼에도 과열이나 과냉각처럼 온도가 끓는점 위로 올라가거나 어느점 아래로 내려가도 액체가 여전히 액체로 존재하는 경우가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히 말하면 ‘핵’이 없기 때문이다. 물질의 상태가 액체에서 기체나 고체로 바뀌기 위해서는 그 변화가 시작되는 출발점이 있어야 하는데 이런 역할을 하는 게 핵이다. 핵은 먼지일 수도 있고 용기의 표면일수도 있다. 또는 외부 충격도 핵의 역할을 할 수 있다.

사실 과열수나 과냉각수는 열역학적으로 불안정한 상태다. 비유하자면 세워둔 도미노같다. 조심조심 상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하나만 툭 건드려도 졸지에 다른 상태로 넘어가는 것이다. 물분자가 도미노 타일이라면 툭 건드리는 역할을 하는 건 먼지 같은 핵이다. 따라서 핵이 없는 순수한 물은 과열이나 과냉각 상태로 존재할 수 있다.

실제로 영하 40도의 과냉각수에 작은 바늘을 떨어뜨리면 바늘 끝이 닿는 순간 교란으로 얼음 결정이 형성되면서 사방으로 퍼져 바늘이 물을 채 통과하기도 전에 얼음 속에 갇힌다고 한다.

약간 무질서한 물(액체)에서 아주 무질서한 수증기(기체)로 바뀌는 건 물리적인 관점에서는 오히려 처리하기 간단하기 때문에 연구가 마무리됐으나 물에서 질서 정연한 얼음(고체)으로 바뀌는 현상은 여전히 모르는 게 많다고 한다. 특히 과냉각수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더 그런데 과냉각수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너무 빨라 관찰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11월 24일자 ‘네이처’에는 과냉각수가 어느 온도까지 액체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가에 대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지금까지 실험으로 관찰된 온도는 영하 41도 부근이다. 이 온도 이하가 되면 물 전체에서 자발적인 핵화 현상이 일어나 얼음으로 바뀐다.

논문에서 미국 유타대의 화학자들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영하 48도 부근을 경계로 과냉각수에서 얼음 결정이 만들어지는 속도가 최대라는 결과를 얻었다고 주장했다. 즉 과냉각수가 존재할 수 있는 한계 온도가 영하 48도 부근이라는 말이다.




한편 영국 리즈대의 연구자들은 1월 24일자 ‘미국립과학원회보(PNAS)’에 과냉각수에서 결정화되는 얼음의 구조에 대한 논문을 실었다. 연구자들은 순수한 물방울을 기름 위에 올려놓고 온도를 낮춰 과냉각수가 어는 과정을 X선 회절법으로 분석했다. 그 결과 정육면체 얼음이 먼저 생긴다는 기존의 이론과는 달리 정육면체 얼음과 육각형 얼음이 섞인 결정구조가 생긴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우리가 보통 얼음이라고 알고 있는 건 육각형 얼음으로 안정한 구조다. 그런데 과냉각수가 얼 때는 먼저 다소 불안정한 정육면체 구조의 얼음 결정이 생기고 그 뒤 이 결정의 구조가 육각형 얼음으로 바뀐다는 게 기존의 이론이었다. 이번 발견은 얼음 형성 과정이 여전히 제대로 이해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액체질소에 얼린 금붕어가 살아나는 이유

최근 마술사와 과학자의 대결을 다룬 한 TV프로에서 과학자가 마술보다 신기한 과학을 보여주겠다며 어항에서 헤엄치고 있는 금붕어를 집어다 액체질소에 던져 넣는 엽기적인 장면이 있었다. 액체질소는 영하 196도(질소의 끓는점)보다 낮은 온도이기 때문에 당연히 넣자마자 금붕어는 꽁꽁 언다.

이 금붕어를 꺼내 다시 물에 넣어주면 잠시 뒤 몸이 녹으면서 기적처럼 금붕어가 다시 움직인다. 정말 마술보다 신기하다(진짜니까). 얼음이 얼면 부피가 커지면서 세포가 파괴돼 다시 녹여도 돌이킬 수 없게 되는데 어찌된 일일까.

사실 이런 극단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만들어진 얼음은 그냥 얼음이 아니다. 즉 결정화된 얼음이 아니라 비결정질(유리질) 얼음이다. 물이 너무 낮은 온도에 갑자기 놓이게 되면 물분자가 결정으로 재배치될 시간도 없이 그대로 굳어버리는 것. 이런 얼음의 유리화가 일어나는 온도는 영하 137도 이하로 알려져 있다. 유리화된 얼음은 결정화된 얼음과는 달리 부피가 늘어나지 않기 때문에 조직이 파괴되지 않는다.

이번주는 올 겨울 들어서도 가장 추운 날씨에, 밤새 내린 눈 때문에 도로는 빙판이 돼 버렸다. 영하 10도 내외면 아직은 여유있게 과냉각수를 유지할 수 있는 온도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물론 과냉각수는 구름 속 작은 물방울로 존재할 뿐 먼지투성이인 우리 주변에서는 찾아볼 수 없겠지만.

 

 



강석기 기자 sukki@donga.com
사진

내과학상자담기  E-MAIL 프린트 카카오스토리 트위터 페이스북 RSS

나도 한마디 2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등록하기

목록


내 당근 보러가기

내 뱃지 보러가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