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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호킹의 불편한 진실


미리 고백하건데, 필자는 이 책을 매우 불손한 마음을 갖고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구입한 때는 설날 연휴가 시작되던 날. 기사 준비 때문에 과학책 하나는 읽어야겠는데 쉽고 의미 없는 책은 싫고, 세상에 사이비 과학책은 너무 많고…. 이 책 저 책을 집어들며 한참을 서 있었다.

그러다 문득 얼마 전 70세 생일을 맞은 영국의 이론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생각났다.

루게릭병으로 불리는 근위축성측색경화증(ALS)에 걸려 손가락 하나도 움직이기 어렵지만, 머릿 속에서 복잡한 우주 방정식을 완벽히 풀어내는 천재 박사. 현존하는 최고의 이론물리학자. 그럼에도 그의 사생활이나 연구 뒷얘기는 거의 드러나지 않은 사람.

최근 과학계 소식에 밝은 과학기자라면 응당 그의 최신작 ‘위대한 설계’를 집어 들었을 것이다. 아니면 전 세계적으로 2000만 부 넘게 팔렸다는 ‘시간의 역사’나 ‘호두껍질 속의 우주’를 읽으며 연휴 내내 책과 씨름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게다.

그렇지만 매일 매일 골치아픈 연구성과만 읽다보니 설날 연휴에는 머리 아픈 우주론보다는 그의 인간 됨됨이를 보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 아닐 수 없다. 아픈 사람에 대해 꼬치꼬치 알아보는 것도 실례겠다 싶어 애써 못 본 척해온 그의 사생활도 궁금해졌다.

이 책의 저자는 대학원생 때부터 호킹 박사와 자주 만났다는 미국 센트럴 코네티컷 주립대의 천체물리학과 크리스틴 라센 교수다. 그렇기 때문에 호킹의 전 부인이나 전문 전기 작가가 쓴 글보다 정직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저자는 천체물리학과 교수답게 스티븐 호킹의 연구를 가능하면 친절하게, 일반인의 언어로 설명하려 애쓰고 있다. 이 정도 책이라면 적당히 점잖게 스티븐 호킹의 일대기를 훑어볼 수 있지 않을까.





●한국 못지 않았던 호킹 집안 교육열

호킹에 대해서 전혀 정보가 없는 사람이 이 책을 읽고 나서 드는 생각은 바로 ‘뛰어난 천재이긴 해도 우리와 다를 바 없는 보통 사람’이라는 것이다. 책 속에서 호킹은 너무 인간다워서 독자는 중간 중간 예상치 못한 불편한 진실을 마주치게 된다.

호킹 집안의 지나친 교육열이 그렇다. 호킹의 뛰어난 능력은 할아버지 때부터 유별났던 호킹 집안의 교육열 때문에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호킹의 어머니 이사벨 호킹은 보통 여성들과는 달리 1930년대에 명문 옥스퍼드대에 들어가 경제학과 철학, 정치학을 공부했다. 아버지인 프랭크 호킹의 가족도 1900년대 초반 사업 실패로 파산하고 말았지만 그의 부모는 프랭크를 옥스퍼드 대학에 보냈다.

이런 교육열은 그대로 스티븐에게 이어졌다. 호킹 집안의 살림은 넉넉치 않았지만 프랭크 호킹은 스티븐을 가장 훌륭한 사립학교에 보내고 싶어 했다. 사립에서는 공립에서 배울 수 없는 질 좋은 교육을 받을 거란 믿음 때문이었다.

프랭크 호킹은 아들이 자신의 뒤를 이어 의학을 전공할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알고 무척 실망이 컸단다. 심지어 아들이 수학을 전공하면 취직하기 힘들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을 걱정했다고 한다. 스티븐이 대학에 들어갈 때도 호킹의 성적은 옥스퍼드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의 부모는 여느 부모들처럼 아들이 꼭 옥스퍼드에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정도면 우리나라의 열성적인 부모들의 모습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병에 대해서 만큼은 대범하지 않았던 천재

스티븐 호킹이 병을 대하는 태도도 생각보다 대범하지 않았다. 증상은 대학교 3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났다. 이전보다 글쓰기가 불편해졌고 자주 넘어졌다. 결국 케임브리지 대학원에 입학한 뒤에야 정확한 병명을 알게 됐지만 그는 가족들과 병에 대해 얘기하길 꺼렸다. 심지어 그의 첫 번째 부인이 된 제인 와일드에게도 자신의 병을 얘기 하지 않았다. 제인은 호킹에 상태에 대해 더 알고 싶었지만 호킹은 그녀의 질문에 속시원하게 대답해주지 않았다.

실제로 스티븐 호킹이 지금처럼 많은 업적을 남길 수 있었던 데는 이 첫 번째 부인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호킹은 몸은 불편했지만 그 누구보다도 모험심이 강했다. 논문을 쓰다가도 미국, 아시아, 유럽 등 세계 곳곳을 다니며 강연을 다녔고 TV에도 자주 출연했다. 이때마다 그의 곁을 지키며 따라다닌 것은 제인이었다. 제인은 알아듣기 힘든 호킹의 말을 받아 적으며 대신 논문을 작성해줬다.

‘시간의 역사’가 2000만 부 넘게 팔렸겠다, 노벨상을 제외한 각종 상을 모두 탔겠다, 제인은 호킹의 전문 간호사를 둘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호킹은 자신의 병을 심각한 상태로 받아들일 테고 게다가 호킹은 지독히 외부인이 사생활에 들어오는 것을 꺼렸기 때문에 제인은 그러지도 못했다. 스페인 문학 박사를 꿈꾸던 제인은 그렇게 오랫동안 호킹의 그늘에 가려져 살았다.






●아무도 읽지 않는 베스트셀러 ‘시간의 역사’

무엇보다 불편한 진실은 천체물리학자가 쉽게 표현하려고 했지만, 이 책을 읽어도 스티븐 호킹이 무엇을 연구했는지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시간의 역사’도 그렇지만 일반 독자들은 스티븐 호킹이 설명하는 우주를 따라가다 보면 이것이 철학인지 과학인지 헷갈리게 된다. 그래서 호킹의 책은 ‘아무도 읽지 않는 베스트셀러’라는 오명을 갖고 있기도 하다.

호킹 박사는 우주에는 시공간이 탄생한 최초의 특이점이 존재한다는 ‘특이점 정리’를 1966년에 발표했다. 우주배경복사의 관측으로 빅뱅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음을 증명했으며 ‘호킹 복사’를 증명해 블랙홀의 성격을 재정의하기도 했다. 보통 블랙홀은 그 주위에 강한 중력장을 형성해 빛을 포함한 모든 물질을 끌어당긴다고 알려졌지만, 양자역학을 적용해 작은 블랙홀도 입자를 방출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특이점 정리처럼 난해한 연구들을 대중에게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이유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 이론들은 우리에게 일용할 식량을 주지도 않고 빨래를 더 깨끗하게 해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인간은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우리는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알 필요가 있다. 이러한 연구들은 우리가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해준다.”

또 호킹은 우주론 외에 줄기세포, 유전자변형농산물(GMO) 등을 적극 지지하며 논란의 중심에 선다. “신에게 우주가 어떻게 시작됐는지 알려달라고 애걸할 필요는 없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입증할 이유도 없다. 왜냐하면 신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라며 신의 존재를 부정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외계인의 존재를 인정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가감 없는 그의 언행은 호킹 자신을 다른 과학자들에게 ‘불편한 존재’로 만든다.

70세를 넘기면서 호킹은 ALS 병에 걸린 환자치고 영국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이 됐다. 최근 병세가 위독해 70세 생일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는 소식도 있었지만, 기적적으로 그는 다시 살아났다. 이미 신화 속의 영웅으로 살고 있는 호킹이 다음은 어떤 언행으로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해줄지 자못 기대가 된다.

김윤미 기자 ym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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