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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당이 이렇게 몸에 나쁠 줄이야


자연은 설탕을 얻기 어렵게 해 놓았지만 사람이 얻기 쉽게 만들었다.
- 로버트 루스틱

별로 근거가 없는 얘기라도 자신의 경험과 일치하면 깊은 인상을 받기 마련이다. 예전에 어디서 읽은 건데 사람들이 어릴 때는 단 걸 좋아하다가 나이가 들수록 쓴 걸 좋아하는 경향을 보이는 건 살면서 인생의 '쓴맛'을 봤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기자는 언제부터인가 커피에 설탕이나 시럽을 안 넣고 와인도 드라이 타입을 좋아하고 썬 토마토에 설탕을 뿌리면 질색한다. 심지어 딸기나 사과 같은 과일이 당도가 높은 쪽으로 개량되는 것도 불만이다.

사실 인생과 단맛 선호도를 연결시킨 위 얘기는 전혀 설득력이 없다. 사탕수수 산업이 커지면서 설탕 섭취량이 꾸준히 증가했고 특히 지난 수십 년 사이 가파르게 상승했지만(50년 만에 3배가 됐다) 이 기간 동안 사람들의 삶이 더 달콤해졌다는 근거는 없기 때문이다.

과학저널 '네이처' 2월 2일자에는 ‘설탕에 대한 끔직한 진실(The toxic truth about sugar)’라는 제목의 글이 실렸는데 설탕이 몸에 안 좋다는 얘기는 이제 상식이므로 그냥 지나갔다. 그런데 3주가 지나서도 이 글이 '네이처' 홈페이지에 가장 인기있는 글로 올라와 있는 걸 보니 궁금한 마음이 생겨 한번 읽어봤다.

미국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대 비만센터 로버트 루스틱 교수와 동료 연구자 두 사람이 함께 기고한 이 글에서 필자들은 설탕이 담배와 술에 맞먹는 건강 위협 요인이라고 선언했다. 참고로 여기서 말하는 설탕(sugar)은 자당(sucrose)을 뜻하는 좁은 의미로 쓰인 게 아니라 포도당(glucose), 과당(fructose) 등을 포함한 넓은 의미로 쓰였다.





●만성질환 사망자수가 감염질환 사망자수 능가
필자들은 글 첫머리에 지난해 9월 유엔이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만성 비전염성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가 감염 질환으로 인한 사망자수를 능가했음을 선언했음을 언급한다. 그 주요 원인으로 꼽히는 게 서구 식생활의 세계화인데 사태를 보는 관점이 바뀌었다고. 즉 예전에는 고지방이 주범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설탕 쪽으로 무게를 옮기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문제가 되는 건 각종 식품에 들어있는 ‘가당(added sugar)’이다. 과일이나 과실주에서 섭취한 설탕은 빼고 식품에 들어있는 설탕의 한 사람당 일일 섭취량을 국가별로 표시한 지도(유엔식량농업기구 2007년 자료)를 보면 미국은 600칼로리가 넘는다. 일본은 200~300칼로리. 당황스럽게도 우리나라는 자료가 없는 나라로 표시돼 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루스틱 교수에게 이메일로 문의해보니 친절하게도 323칼로리라고 알려준다. 아마 지도를 만들 때 착오가 있었나보다.






그림

 


한 사람당 일일 설탕 섭취량(과일이나 과실주에서 섭취한 설탕 제외)을 국가별로 표시한 지도(유엔식량농업기구 2007년 자료). 착오로 우리나라는 데이터가 없는 걸로 표시됐지만 323칼로리로 낮지 않은 수치다.

이 지도를 보면 현재 비만인구의 급증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나라들의 분포와 설탕 섭취량에 따른 분포가 일치함을 알 수 있다. 필자들은 설탕의 유해성이 술(에탄올)에 필적한다며 규제가 필요한 네 가지 기준을 충족한다고 말한다.

첫 번째는 불가피성으로 어디를 가도 설탕이 없는 곳은 없다. 원래 설탕은 과일이 열리는 계절에나 (가끔은 벌집을 발견해서) 맛볼 수 있는 영양분이었지만 지금은 안 들어 있는 식품을 찾기 어렵다.

두 번째는 독성으로 설탕의 과잉 섭취는 비만 뿐 아니라 건강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쌓이고 있다.

세 번째는 남용의 위험성으로 담배나 술처럼 설탕도 의존성이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설탕은 뇌 보상센터의 도파민 신호를 약화시켜 음식을 먹을 때 느끼는 쾌감이 약하게 전달돼 더 많이 먹게 한다.

끝으로 사회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으로 설탕 과잉 섭취로 생긴 대사질환을 치료하느라 의료비용이 급증하고 있다는 것. 결국 이 모든 걸 고려하면 설탕도 술처럼 규제가 필요한 품목이라는 게 필자들의 주장이다.

그 상징적인 조치로 과당을 ‘일반적으로 안전하다고 볼 수 있는 물질(GRAS·generally regarded as safe)’ 목록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것. 그런데 글을 보면 설탕 가운데 유독 과당이 집중공격의 대상이다. 도대체 왜 자당(우리가 익숙한 설탕)이 아닌 과당이 유독 미움을 받게 됐을까.





●과당 대사는 에탄올 대사와 비슷
자당은 포도당과 과당으로 이뤄진 분자다. 포도당과 과당처럼 단위가 되는 당을 단당류라고 부르고 단당류 두 개가 합쳐진 당분자를 이당류라고 부른다. 결국 자당 10그램을 먹으면 포도당 5그램과 과당 5그램을 먹는 셈이다.

사실 인류가 자연에서 섭취한 설탕은 자당 보다는 포도당과 과당이 따로 떨어져 있는 형태가 더 많았다. 예를 들어 사과 100그램에는 자유 과당이 6그램, 자유 포도당이 2.4그램, 자당이 2그램 들어있다. 포도는 자유 과당이 8그램, 자유 포도당이 7.2그램인 반면 자당은 0.2그램에 불과하다.

그런데 사탕수수에는 자유 과당과 자유 포도당은 거의 없고 대부분 자당의 형태로 있다. 여기서 추출해 결정화한 설탕이 보급되면서 자당이 주된 설탕의 형태가 된 것.

그런데 지난 수십 년 사이 이런 트렌드에 변화가 생겼다. 옥수수 녹말을 효소로 처리해 옥수수 시럽을 만드는 방법이 개발됨에 따라 식품업계에서 옥수수 시럽이 자당을 대체하기 시작한 것. 녹말은 포도당이 사슬처럼 엮인 고분자이므로 옥수수 시럽의 주성분은 포도당이다. 그런데 여기에 또 다른 효소를 처리하면 포도당이 과당으로 바뀐다. 이렇게 나온 게 ‘고 과당 옥수수 시럽(HFCS·high-fructose corn syrup)’이다.
설탕 과잉섭취의 위험성이 부각되면서 일부 국가에서는 학교에서 탄산음료의 판매를 제한하고 있다. 고 과당 옥수수 시럽이 들어있는 탄산음료. (사진 iStockphoto)

식품업계가 과당을 주목하게 된 건 자당에 비해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즉 같은 양일 때 과당은 자당보다 1.7배나 더 달다. 반면 포도당은 자당의 70% 수준이다. 따라서 HFCS는 그냥 옥수수 시럽의 반 만 써도 같은 효과를 볼 수 있다. HFCS는 자당에 비해 가격도 싸고 물성도 좋기 때문에(식품을 만들 때 섞기 편하고 결정이 석출되는 문제도 없다) 웬만한 식품에 다 들어가고 있다.

요즘은 그런 표기를 못 쓰지만 예전에만 해도 식품업체들은 ‘무설탕' ‘무가당' 음료라고 하면서 과당을 쓰는 꼼수를 부렸다. 무설탕의 설탕, 무가당의 당을 자당으로 좁게 해석해 말장난을 한 건데 아무튼 순진한 소비자들은 무가당은 몸에 좋은 거라며 돈을 더 주고 사먹었다.

식품업계는 과당이 자당보다 좋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과당은 포도당이 아니기 때문에 혈당수치에 미치는 영향이 작아 당뇨병을 일으킬 위험이 낮다는 것이다. 실제 지금 많은 식품의 성분표시에서 ‘액상 과당’을 볼 수 있는 배경이다.

그러나 과당은 지나치게 섭취할 경우 포도당보다 나쁜 건 물론 그 해악이 에탄올에 버금간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다. 우리 몸은 과당을 비슷한 분자인 포도당(분자식이 C6H12O6로 똑 같고 배치만 다른 이성질체 관계다)이 아닌 에탄올처럼 인식한다는 것. 즉 몸에 섭취된 포도당은 혈관을 타고 온 몸으로 퍼져 세포에서 흡수돼 에너지원으로 쓰이는 반면 과당은 에탄올과 마찬가지로 대부분 간세포에서 처리된다.

과잉섭취 됐을 때도 마찬가지여서 과당은 간에서 지방으로 바뀌고 이 과정에서 지방간을 유발할 수 있다. 또 인슐린저항성이 생겨 당뇨병으로 이어진다. 과당은 단백질에 달라붙어 염증반응을 일으키기도 한다. 이는 에탄올의 대사산물인 아세트알데히드가 하는 일과 비슷하다. 또 요산의 생성을 유발해 고혈압으로 이어진다.

아래 에탄올과 과당을 과잉 섭취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을 비교한 표를 보면 상당히 비슷함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성분표시에 ‘액상 과당’이 적혀 있는 식품을 집어들 때 한 번 생각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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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기 기자 sukk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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